피아니스트 최희연(37ㆍ서울대 교수)이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32곡 전곡 연주의 마지막 무대를 앞두고 있다. 2002년부터 매년 2회씩 4년에 걸친 여정을 11일 오후 8시 금호아트홀에서 마친다. 요란하게 선전한 것도 아닌데, 이 공연은 그동안 매회 매진되며 잔잔한 화제와 진한 감동을 이어왔다.
“이 시리즈를 하면서 베토벤을 보는 제 시각이 많이 바뀐 것을 느낍니다. 베토벤의 겉모습이나 성격 같은 대강의 특징만 알다가 뼈 구조를 알게 되었다고나 할까요.
베토벤 음악의 강점은 ‘구조’에 있어요. 작품에 대한 인상만 갖고는 절반도 이해할 수 없죠. 파고 또 파도 끝이 없어서 제대로 연주하려면 100% 이해로도 부족해요. 아직 멀었죠. 계속 공부해서 나이 50대쯤 되어 연륜이 쌓이면 다시 해보고 싶습니다.”
마침표를 찍는 게 아니라 새로 시작하는 사람 같다. 본래 끝이 없는 게 음악의 길이겠지만, 그는 남다른 진지함으로 흔들림 없이 걸어왔다. 말소리도 인상도 차분하지만, 그의 내면에 깃든 뜨거운 정열은 금방 감지된다. 평론가나 관객들은 그를 ‘자신만의 분명한 색깔을 지닌 대형 피아니스트’라고 말한다.
그는 이 시리즈의 매회 프로그램을 베토벤 작품의 연대순이 아닌, 같은 조성의 곡들로 초기ㆍ중기ㆍ후기 작품을 섞어 구성해왔다. 이런 방식은 서로 다른 시기에 작곡된 작품들이 연속성을 지닌 채 관객에 다가오는 효과를 주었다. 피날레인 이번 공연에서는 다단조와 다단조 관련 조성의 곡들로 소나타 5번과 18번, 25번에 이어 마지막 32번을 연주한다.
“베토벤이 ‘상냥스런 소나타’라고 불렀던 25번은 장난끼가 있는 곡이에요. 반면 32번은 베토벤의 유언 같은 무겁고 큰 곡이죠. 인생을 마감하고 눈을 감는 듯한 종지를 갖고 있죠, 다 듣고 나면 ‘브라보’를 외치는 게 아니라 눈 감고 침묵해야 할 것 같은. 그런데 이 곡이 딱 2개 악장으로 되어있어요.
대곡을 왜 달랑 2개 악장으로 썼을까 하고 학자들 사이에 해석이 분분하지만, 제가 보기에는 더 이상 아무 것도 덧붙일 필요가 없어서 그런 것 같아요. 그만큼 완벽한 작품이죠.”
베토벤과 동행하는 동안 그의 삶에도 변화가 있었다. 지난해 결혼을 해서 한 아이의 엄마가 됐다. 딸이 다음 달 첫 돌이다. 딸 얘기가 나오자 웃는다. “아이고, 아기가 ‘날으는 원더우먼’이에요. 엄마 뱃속에서부터 베토벤만 들으며 자라선지 성격이 불 같아요.”
예고 재학 중에 유학을 떠나 독일과 미국에서 공부하고 활동하던 그는 1999년 가을 서울대 교수로 임용되면서 귀국했다. 그에게 충실한 팬들이 많이 생긴 것은 마리아 칼라스, 비오티, 부조니 등 주요 콩쿠르를 휩쓴 화려한 경력보다는, 무대에서 보여준 모습이 미덥고 훌륭했기 때문이다.
이번 베토벤 사이클을 마치면 일단 좀 쉬었다가 내년 봄에 활동을 재개한다. 3월에 코리안심포니와 바르토크의 피아노협주곡 3번 협연, 스위스에서 드뷔시와 라벨, 베토벤 곡으로 독주회, 4월 전국 순회연주를 할 예정이다. 공연문의 (02)6303-1919
오미환기자 mho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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