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실 벤처기업 지원으로 1조원 이상의 국고 손실을 초래한 기술신용보증기금(기보)에 대해 검찰이 본격 수사에 착수했다. 이와 별도로 경찰도 기보 간부들이 업체에 보증을 서주는 대가로 금품을 받은 단서를 잡고 수사를 진행 중인 것으로 확인됐다.
서울중앙지검 특수3부(홍만표 부장검사)는 2일 기보의 보증비리 사건과 관련해 감사원이 업무상 배임 혐의로 고발한 이근경 전 이사장(현 전남도 정무부지사) 등 기보 간부들을 출국 금지하고, 실무자들에 대한 조사를 진행하고 있다. 이씨는 2001년 4월부터 2002년 5월까지 기보 이사장을 지냈다.
검찰 관계자는 “수사대상이 광범위하고 정부의 벤처정책에 대한 위법성 판단이 필요해 수사에 상당한 시일이 걸릴 것 같다”고 말했다. 검찰은 감사원의 고발 내용 외에 기보 간부들의 비리 단서를 여러 건 입수한 것으로 알려져 지난해 정보화촉진기금 비리 사건처럼 무더기 사법처리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감사원은 기보가 2001년 벤처기업들이 발행한 2조 2,000억원 규모의 ‘프라이머리 CBO’(회사채담보부증권)에 대한 부실보증으로 1조원 이상의 손실을 초래했다며 이 전 이사장 등을 업무상 배임혐의로 고발했다.
이를 통해 지원 받은 업체가 808개에 이르고, 이 중 717개 업체에 대해서는 기술평가조차 하지 않았던 것으로 드러났다. 기보는 9월 28일 지원금을 횡령하거나 유용한 혐의가 드러난 업체 4곳을 검찰에 고발하고 44곳을 수사 의뢰했다.
감사원은 기보가 비현실적인 주가지수와 경기예측 등을 근거로 보증계획을 수립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올해 국회 국정감사에서 2001년 당시 재정경제부가 벤처기업 보증지원액을 2조원대로 확대하기로 기보와 합의했다는 문서가 공개돼 정부의 무분별한 벤처육성정책이 보증비리의 배후라는 지적이 나왔다.
이 전 이사장도 “보증 확대는 정부의 정책적인 판단을 기초로 벤처기업 육성을 위해 사실상 정부 주도 하에 이뤄진 일”이라고 주장했다.
한편 서울경찰청 광역수사대는 유령 제조업체 D사 대표 안모(45)씨가 전 기보 이사장 비서실장 이모씨에게 2001년 9월 1,000만원, 전 기보 서울지역본부장 김모씨에게 2002년 8~11월 2,000만원을 준 혐의를 잡고 수사 중인 것으로 확인됐다.
경찰은 안씨가 2000년 6월~2002년 4월 공범인 정모씨에게서 기보 로비자금 명목으로 6,000만원을 추가로 받아갔다는 관련자 진술도 확보, 수사를 확대하고 있다.
경찰은 안씨에게서 1억6,000만원과 1,000만원씩 받고 모두 59억6,000만원 상당의 신용보증서를 발급해준 신용보증기금(신보) 직원 주모(37)씨와 백모(45)씨, 대출 청탁 대가로 금품과 골프 접대를 받은 전 K은행 지점장 정모(55)씨, H은행 지점장 김모(50)씨를 불구속 입건했다.
경찰은 이 같은 방식으로 은행에서 153억원을 부정 대출받은 안씨 등 일당 18명을 구속하고 17명을 불구속 입건했다.
■ 프라이머리CBO(Collateralized Bond Obligation): 여러 기업이 새로 발행한 회사채를 묶어 이를 담보로 발행하는 채권담보부증권. 신용등급이 낮아 개별기업이 자체적으로 회사채를 발행하기 어려울 때 공동으로 위험을 부담해 자금을 조달하는 금융기법이다.
이진희 기자 river@hk.co.kr안형영 기자 prometheu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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