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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ekzine Free/ 여행 - 무주 적상산 - 단풍과 낙엽, 生과 死의 공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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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ekzine Free/ 여행 - 무주 적상산 - 단풍과 낙엽, 生과 死의 공존

입력
2005.11.0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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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명 덕유산의 명성에 가린 탓이리라. 덕유산과 함께 국립공원으로 지정된 지 30년이 됐지만 적상산을 찾는 발길은 덕유산에 비하면 턱없이 적다.

겨울 상고대와 봄 철쭉에 뒤지고, 여름에는 구천동의 맑은 물을 따라 가지 못하니 그도 그럴 만 하다. 하지만 가을만은 다르다. 단풍이 득세하는 때만은 제아무리 덕유산이라한들 적상산을 따르지 못한다.

적상산은 이름부터 단풍향이 가득하다. 산을 뒤덮은 홍단풍이 마치 붉은(赤) 치마(裳)를 두른 아낙네의 모습 같다고 해서 붙었다. 멋들어진 이름을 붙인 주인공은 고려말의 최영 장군이다. ‘황금을 보기를 돌같이 하라’던 그도 적상산의 아름다움앞에는 범상한 인간일 뿐이었나 보다.

11월에 접어든 적상산은 막바지 가을을 즐기기에 최적의 조건을 갖췄다. 소설이나 영화도 절정에 치달은 바로 뒤 파국으로 이어지는 부분이 가장 흥미진진한 이치와 흡사하고나 할까.

단풍(절정)에서 낙엽(파국)으로 진행중인 적상산은 일년 중 가장 드라마틱한 풍광을 자아낸다. 굳이 발품을 들이기 싫어하는 여행자에게도 좋다. 해발 1,000m까지 도로가 나 있어 드라이브 코스로도 손색이 없다. 한 싯구처럼 ‘폴란드 망명 정부의 지폐’를 연상시키는 황량함이 아니라, 차분히 스며드는 낭만의 추일서정(秋日抒情)이 있다.

무주 시내를 지나 적상산 입구에 드는 순간부터 현란한 단풍쇼가 펼쳐진다. 도로 옆에 도열한 단풍나무와 은행나무는 붉었다 노래지기를 반복하며 이어진다.

꼬불꼬불 연결되는 길은 한 치 앞을 내다보기 어려울 정도다. 네비게이션이 보여주는 도로의 모습은 영락없는 구렁이이다. 언젠가 책에서 보았던 아프리카 보츠와나의 오카방고 삼각주가 떠오른다. 도저히 속도를 낼 수 없는 상황.

그러나 차량의 속도를 늦추는 것은 도로 때문이 아니다. 단풍이 저리도 현란하게 마술을 부리고 있는데 어찌 빠져들지 않을까.

산 중턱쯤이었을까, 천일폭포 앞. 하늘 아래 하나 밖에 없다할 정도로 잘 생긴 폭포지만 물줄기는 약해질 대로 약하다. 구겨진 체면을 세워주는 것은 폭포 주변을 가득 메운 낙엽. 폭포 앞의 작은 연못은 그대로 만화경이다. 손을 담그면 붉은 물감이 금방이라도 뚝뚝 떨어질 것 같다.

적상터널을 지나니 산 허리를 댐으로 막아 만들어진 적상호가 나온다. 해발 1,000m에 조성된 인공 호수다. 산 아래 무주호에서 끌어올린 물을 호수에 담은 뒤 다시 떨어뜨려 전기를 만들어 내는 곳이다.

아담한 호수 주변을 에워싼 단풍나무가 고즈넉한 분위기를 돋운다. 양수 발전기 위에 조성된 전망대에 오르면 덕유산, 두문산, 봉화산, 조항산 등 인근 산을 비롯, 무주 시내 전경이 한 눈에 잡힌다.

적상호를 굽어 보고 있는 적상산 사고(史庫)는 조선왕조실록과 왕실의 족보를 보관하던 곳. 단풍보다 더 붉은 단청이 인상적이다. 사고를 지나 안국사로 가는 길 300여m는 적상산 낙엽 여행의 하이라이트. 짙어가는 단풍과 뒹구는 낙엽이 한 데 어우러져 필설을 비웃는 장관을 이룬다.

안국사는 적상산 사고의 관리를 위해 승병들이 기거하던 사찰. 절 아래에는 이 일대를 둘러싼 적상산성이 버티고 있다. 숲이 우거져 앞을 보기 어려울 정도이지만 간간이 아래 마을이 빼끔 바라다 보인다. 산성은 낙엽 천지다.

바닥에는 낙엽이 제법 두툼하다. 나그네는 이 적요함을 행여 깰까, 낙엽 밟기조차 두렵다. 그렇게 가을이 깊어 간다.

적상산(무주)=글ㆍ사진 한창만기자 cmhan@hk.co.kr

■ 여행수첩/ 무주여행

# 가는 길

수도권에서 출발, 중부고속도로(대전-진주 고속도로가 중부고속도로로 통합됐다) 무주IC에서 나온다. IC 통과 후 좌회전, 적상면 삼거리와 사산 삼거리에서 각각 좌회전한 뒤, 치목 터널과 구천동 터널을 지나면 무주리조트에 도착한다.

덕유산은 국립 공원으로, 무주 구천동에서 접근하려면 입장료를 내야 한다. 그러나 무주리조트를 통과할 경우 별도의 입장료를 내지 않아도 된다.

덕유산으로 오르려면 무주리조트가 운영하는 관광 곤돌라를 이용하면 편하다. 오전 10시부터 오후 4시까지 운행하며, 주말에는 1시간 가량 연장 운행한다. 왕복권 성인 1만원, 어린이 7,000원. 설천봉에 오른 뒤 향적봉을 지나 무구 구천동으로 등산하려는 관광객은 편도권을 구입하면 된다. 성인 6,000원, 어린이 4,500원.

적상산으로 가려면 무주IC를 나온 뒤 무주 시내를 지나 상곡천 앞 다리를 건너면 덕유산국립공원 적상분소 매표소를 만난다. 입장료 3,200원.

# 숙박 시설

전북 무주는 남부 지역 최대 규모의 스키장인 무주리조트를 둔 탓에 스키 시즌을 제외하면 숙박 시설이 여유가 있는 편이다. 무주리조트에만 1,500개가 넘는 객실이 있다.

리조트측은 스키철이 시작되기 전까지 다양한 할인 이벤트를 열고 있다. 최고급 호텔인 호텔 티롤 스위트룸에서 1박하며 뷔페에서 저녁과 이튿날 아침을 즐기고, 곤돌라와 사우나 시설을 함께 이용하는 무주 스위트 패키지를 29만9,000원(2인기준)에 판매중이다. 토요일만 가능하다.

호텔 티롤 디럭스 룸에서 숙박하며, 조식과 곤돌라, 사우나가 포함된 상품은 15만5,000원(2인 기준). 금, 토요일과 공휴일에 이용할 수 있다. 주중 상품도 있다.

가족 호텔에서 숙박하고 곤돌라와 조식이 포함된 무주 단풍 패키지는 2인 기준 7만7,000원, 3인 9만원, 4인 1만3,000원이다. 월~목요일까지 이용이 가능하다.

무주리조트 이외에 호텔 무주IRIS (063-324-3400), 일성무주콘도(063-324-3939) 등 콘도 시설도 있다.

# 먹을 거리

무주군청 앞에 위치한 향토식당(064-322-2344)은 오목한 항아리에 담궈내는 돼지고기 오모가리 찌개가 별미이다. 어죽도 무주의 대표 음식 중 하나. 민물고기인 자가미의 내장을 빼고 삶아 뼈를 발라낸 뒤 삶은 국물에 쌀과 수제비를 넣어 끓여낸 것으로 담백하고 소화도 잘 된다.

내도리 입구의 섬마을식당(063-322-2799), 무주읍의 금강식당(322-0979)이 유명하다. 설천면에 있는 전주한국관(320-8641)의 산채 정식도 추천할 만하다.

한창만기자 cmhan@hk.co.kr

■ 길에서 띄우는 편지/ 덕유산 상고대

여행의 목적이 취재일 경우에는 많은 어려움이 있습니다. 예상대로 취재가 풀려 나가는 경우란 가물에 콩나는 식이기 때문입니다. 겨울로 접어들면 그 현상이 더욱 심해집니다.

지난 해 겨울, 상고대 지역을 취재하러 덕유산을 두 차례이나 방문했더랬죠. 상고대의 흔적을 발견하려면 최소한 해뜨기 전에 정상에 올라야 하지만 곤돌라가 운행되는 시간은 오전 10시 전후입니다. 이 시간에 산을 오르면 십중팔구 상고대는 녹기 마련입니다. 결국 방법은 새벽부터 산을 오르는 방법밖에 없습니다.

곤돌라 입구에서 스키 코스를 거슬러 올랐습니다. 칠흙 같은 어둠 속. 랜턴 하나에 의지한 채 산을 올랐습니다. 평소 스키를 타고 내려오던 길이라고 생각하니 느낌이 묘하더군요.

문명의 이기를 이용하면 20분도 안 되는 거리를 2시간 30분을 걸어 겨우 도착했습니다. 하지만 상고대의 흔적은 어디에도 없었습니다. 정말, 몹시 허탈하더군요.

당초 이번 여행의 테마는 물안개였습니다. 비가 온 뒤 날이 추워져 새벽 호수에 어리는 물안개의 정취란 무엇에 비기기 힘들죠. 무주를 목적지를 잡은 것은 인근에 호수가 많아서 였습니다.

무주에는 무주호와 적상호가 있고, 이웃한 진안에는 용담호가 있습니다. 어디를 갈 지 고민하다가 결국 진안의 용담호를 목적지로 잡았습니다. 무주에서 숙박을 하고, 새벽에 일어나 진안으로 차를 달렸습니다. 오전 6시 30분부터 용담호를 배회했지만, 기다리던 물안개는 끝내 모습을 나타내지 않았습니다.

사실을 말하자면, 덕유산 상고대는 처음부터 큰 기대를 하지는 않았습니다. 물안개 취재에 실패하고 행여나 하는 마음으로 곤돌라에 몸을 실었을 뿐이랄까요. 게다가 시간은 오전 10시를 훨씬 지나 있었습니다.

만약 상고대가 생겼다고 해도 사라질 때였죠. 허탕치면 커피나 한 잔 하고 내려가자는 심정으로 올랐습니다. 그런데 결과는 너무도 만족스러웠던 겁니다.

힘들게 취재하려던 것은 실패하고, 기대하지 않았던 곳에서 뜻밖의 수확을 이뤄낸 겁니다. 인간의 기대와 계산이란 게 자연 앞에 얼마나 나약한가를 새삼 깨닫게 됩니다. 하지만 세상에는 자신이 자연보다 잘났다고 생각하는 인간들이 많으니….

한창만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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