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메세나협의회는 문화예술을 지원하는 기업들의 협의체다. 시인과 예술가들을 후원했던 고대 로마의 재상 마에케나스의 이름에서 프랑스어 ‘메세나’(mecenat)가 나왔다.
이 단체의 6대 회장으로 선임된 박영주(朴英珠ㆍ64) 이건산업 회장이 3일 취임 회견을 했다. 이건산업은 국내 대표적 종합목재기업으로 이건창호시스템, 이건리빙, 이건인테리어 등의 관계사를 거느린 중견회사. 대기업이 아닌 기업 회장이 메세나협의회 수장을 맡기는 처음이다.
“전임자였던 고 박성용 금호아시아나 그룹 명예회장이 메세나 중흥을 일으키고 많은 일을 하셨는데, 그 분보다 많이 부족하고 제가 하는 회사도 작고 해서 계속 사양하다가 사회에 봉사할 좋은 기회다 싶어서 받아들였어요. 개인적으로는 영광이지만, 걱정이 크죠.”
하지만 남들이 보기에는 준비된 메세나 운동가 같다. 평소 각종 공연과 미술 전시장을 즐겨 찾고 판화를 수집하는 문화예술 애호가다.
특히 그의 아이디어로 시작된 이건 음악회는 16년째 수준높은 무대를 이어오고 있다. 지난해 초청한 재즈 밴드 ‘마커스 로버츠 트리오’는 그가 해외 출장 중 공연을 보고 직접 섭외한 것이다.
목재 자원 확보를 위해 진출한 남태평양 솔로몬 군도에 1989년 재단을 설립해 무료병원ㆍ미술관ㆍ장학사업을 펼치고 있고, 예술의전당과 국립미술관 후원회 부회장, 영국 테이트 갤러리 국제협의회 멤버, 미국 시카고 예술학교 이사도 맡고 있다.
대기업도 아닌 회사가 이런 사업을 꾸준히 하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다. 하지만 그는 “메세나는 여유가 있는 큰 기업이 부리는 사치가 아니다”라며 작은 기업이라도 회사 규모에 맞게 예술 지원 활동에 나서 장기적으로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18년 전 처음 이건음악회를 제안했을 때 ‘나무 공장에서 무슨 음악회냐’며 사내에서 반대가 심했죠. 그때만 해도 정말 중소기업이었거든요. 메세나 활동은 작은 것에서부터 시작할 수 있어요.
그리고 메세나 활동의 수혜자는 바로 기업 자신이에요. 당장 눈에 보이지 않더라도 길게 보면 기업 내부의 자긍심과 창의성이 높아지고 사회적 보상도 따라옵니다.
기업과 예술의 아름다운 만남이라고 할 수 있죠. 이를 주선하는 것이 메세나협의회 사업의 본령이라고 생각하고 여기게 충실하려고 합니다. 앞으로 회원사를 늘려 협의회를 좀더 독립적이고 능률적인 조직으로 만드는 것도 과제이고요.”
그가 예술에 관심을 갖게 된 데는 가족 배경도 무관치 않아 보인다. 며느리와 딸, 조카가 음악, 미술 등 예술 분야에서 일하고 있다.
어릴 때 피아노와 가야금을 잠시 배웠고 고등학생 때까지 그림도 그렸다는 그는 일요일이면 인사동의 화랑과 미술관을 돌아다닌다. 배부른 취미 같은가.
그가 말한다. “사람들이 생활의 여유가 없는 것 같아요. 가만히 보면 제가 더 바쁜데. 마음 먹기에 달린 일 아닌가요?”
오미환기자 mho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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