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계천 복원의 축제 분위기에 일부러 찬물을 끼얹고 싶은 사람은 없겠지만 이를 심드렁한 표정으로 바라보는 사람들도 천변에서 일하고 있다. 8,000여개의 가게로 이뤄진 청계천 3~9가의 청계천 공구상가는 축제의 소외지대다.
한때 “미사일과 탱크도 조립할 수 있다”는 소문이 돌 정도로 활기가 넘쳤던 곳이지만 요즘 이곳 상인들은 말이 없어졌다.
“청계천 좋아졌지요?”라는 물음에 상인들은 “고가도로 뜯어내니까 공기는 깨끗해졌네요”라고 퉁명스럽게 대답을 던질 뿐이다. 이들은 도시 미관만을 중시하는 청계천 복원이 상가의 몰락을 재촉하고 있다고 불만을 표시했다.
무거운 장비를 취급하는 업종 특성상 차량의 진입과 진출로, 주차공간이 충분해야 하는데도 청계천 복원은 이를 어렵게 했다. 복원 전 8~10차로였던 상가 앞길이 4차로로 축소됐고, 광교~청계8가 인도에는 올해 주차단속 카메라가 34대나 설치됐다.
청계천 3가에서 32년째 공구수입상을 해왔다는 이관우(54)씨는 “청계천 공구상가의 경쟁력은 차를 타고 돌면서 필요한 자재들을 ‘원스톱’으로 살 수 있다는 점이었다”며 “복원 후에는 손님이 10초만 주차해도 위반스티커를 발부하고 물건을 내리고 싣는 것조차 맘 편히 할 수 없게 하니 서울시가 아예 장사를 못하게 하려는 모양”이라며 울상을 지었다.
드라이버, 드릴 등 가정용 공구를 팔고 있는 이재준(40)씨는 “불황 탓도 있겠지만 청계천 복원공사가 시작되자 시흥이나 구로 공구상가 등으로 빠져나간 상인들도 상당수”라며 “권리금만 1억원이 넘는 가게도 많았는데 복원 후에는 목좋은 곳도 권리금 없이 가게를 내놓는다”고 말했다.
문을 닫은 공구상은 호프집, 편의점, 식당 등 ‘관광객’ 들을 겨냥한 가게들로 속속 바뀌고 있다.
청계천 2가 판촉물ㆍ인쇄물 골목도 사정은 별반 다르지 않다. 37년째 판촉물 가게를 해왔다는 권태희(65)씨는 “청계로를 따라 운행하던 버스 노선이 대폭 줄었고 주말이면 차량 통행을 막아버리는 바람에 영업이 더 힘들어졌다”며 “상인들의 밥벌이를 힘들게하는 청계천 복원이 무슨 소용이 있느냐”며 반문했다.
청계천로 일대에서 장사를 하다가 지난해 동대문운동장 안 풍물상가로 쫓겨온 노점상들도 복원이 마냥 즐겁지만은 않다.
청계천 8가에서 6~7년간 중고의류를 팔다가 지난해 2월 이곳에 자리잡았다는 박선희(47)씨는 “복원 전 길가에서 장사를 할 때보다 수입이 3분의 1이나 줄었고 하루종일 개시조차 못하는 상인들도 상당수” 라며 “청계천 특수는 고사하고 내년이면 이곳에서 상인들을 쫓아낸다는 소문이 있어 걱정에 잠을 못 이룬다”고 한숨을 쉬었다.
‘풍년거지가 더 서럽다’는 옛말을 떠올리지 않더라도 청계천 특수로 웃고 있는 사람들 뒤로 청계천 터줏대감들의 한숨도 깊어지고 있다. 이들이 어디로 갈지 어떻게 살아낼지는 아무도 모른다.
이들의 근심걱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해가 떨어지자 청계천에는 오색조명이 켜지고 형형색색 분수가 물을 뿜으며 산책나온 사람들의 웃음소리로 왁자지껄해진다.
이왕구기자 fab4@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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