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치에서 기생충 알이 발견돼 온 나라가 시끄럽습니다. 식당에서 내 놓는 김치를 멀리하는 사람이 늘어난다고 합니다.
또 철새들이 전염시킬 우려가 있는 조류인플루엔자가 혹시 발생할까 봐 방역당국이 긴장하고 있으며 조류인플루엔자가 사람에게 전염되어 엄청난 재앙을 불러일으킬 것이라는 경고가 보도되면서 사람들의 불안이 커지고 있습니다.
닭고기가 안 팔릴까 봐 양계업자들의 걱정이 쌓여갑니다. 먹을거리에 관련된 걱정은 심리적인 영향이 커서 예상보다 훨씬 더 파급효과가 큽니다.
이번에 문제가 된 장내 기생충 질환은 우리나라에서 80년대 이후 거의 사라진 질환으로 장년층에게는 추억의 질환으로만 남아 있습니다. 회충, 요충, 편충 같은 장내 기생충은 오염된 흙에서 재배된 채소에 묻은 알이 입을 통해 감염됩니다.
장내에서 부화되어서 성충으로 자라고 다 자란 성충이 알을 낳고 대변을 통해 배출되면 인분을 비료로 사용하는 지역에서는 다시 사람에게 감염되는 경로를 반복합니다.
우리나라의 경우 80년대 이후 화학비료 사용이 보편화되고 위생상태가 개선되면서 이런 반복되는 생활사 고리가 끊어져서 기생충 왕국의 오명을 벗어난 것이죠.
기생충 감염으로는 눈에 띄는 증세가 없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과거에 우리나라에 기생충 질환이 기승을 부릴 때는 매년 대변검사를 하든지 혹은 정기적으로 구충제를 복용한 것은 이런 기생충 질환이 특별한 증세를 나타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물론 감염된 기생충 수가 너무 많으면 설사와 복통 같은 증세를 일으키기도 합니다.
기생충질환의 진단과 치료는 간단해서 대변검사를 통해 알이 발견되면 구충제를 경우에 따라 한번 혹은 3일간 복용함으로써 90% 이상 치료됩니다.
저는 병원에서 건강진단 목적으로 하는 대변검사에서 이번에 문제가 된 기생충 알이 발견된 경우를 지난 10년간 본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따라서 이번 파동이 질병 차원의 문제로 커질 가능성은 거의 없을 것이므로 안심해도 될 것입니다.
외국 여행이 잦은 요즘 이런 후진국형 기생충 질환을 막는 행동 수칙이 있습니다. ‘익히고, 끓이고, 벗겨서 먹는다. 그리고 잊어버린다’는 것입니다. 특히 마지막 잊어버리는 것, 이것이 중요합니다. 찜찜한 느낌을 계속 갖고 걱정하는 것만큼 건강에 해로운 것도 없으니까요.
조류인플루엔자 역시 마찬가지로 대처하시면 됩니다. 즉 삼계탕과 같은 끓인 음식이나 튀김은 아무 문제가 없는데도 괜한 걱정을 하시는 분이 있습니다. 다행하게도 아직 우리나라에 닭이나 오리에 독감이 발생했다는 소식이 없습니다.
설사 그렇더라도 독감에 걸려 폐사된 닭이나 오리가 시중에 나돌지 않게끔 신속하게 또 철저하게 처리하면 안심할 수 있습니다. 닭의 인플루엔자가 사람에게 옮겨 갈 가능성을 원천적으로 봉쇄하는 것이 최선이기 때문입니다. 또 사람 독감에도 걸리지 않도록 독감 예방주사를 맞을 것을 권고하고 있습니다.
다만 오해하지 마실 것은 이 예방주사가 감기를 예방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또 예방 주사를 맞는 우선순위가 있어서 모든 국민이 다 맞아야 할 주사는 아닙니다.
꼭 맞아야 될 사람들은 인플루엔자에 걸리면 아주 심하게 앓을 가능성이 큰 사람입니다. 만성병을 앓고 있다든지 면역억제제를 사용하는 사람들, 고령자들이 젊고 건강한 사람보다 인플루엔자 후유증이 클 것이 예상되므로 꼭 맞으셔야 합니다.
정보통신이 발달하고 사람의 왕래가 잦아지면서 질병의 발생이나 전파가 전과 다르게 세계화하고 있습니다. 먼 나라의 질병쯤으로 여겨지던 병도 어느덧 우리 눈앞의 문제로 다가오는 시대에 살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만 잘 살고 잘 대비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죠. 김치의 기생충 알 파동이나 조류인플루엔자 위험을 볼 때 질병 문제를 전 지구적인, 생태적인 관점으로 생각하고 풀어가야 할 필요가 생겼습니다.
삼성서울병원 가정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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