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아소 다로(麻生太郞ㆍ65) 외무성 장관의 홈페이지에는 외할아버지 요시다 시게루(吉田茂) 전 총리에 대한 추억과 사진이 여러 곳에서 나온다. “일본은 반드시 좋아지고 일어선다”는 요시다 전 총리의 어록도 들어있다.
요시다는 맥아더 군정 하에서 총리를 지내며 일본의 ‘재독립’을 이룬 명재상으로 꼽힌다. 또한 국회 본회의장에서 ‘바카야로(바보자식)’ 라고 소리를 쳐 정권 붕괴를 가져왔을 정도로 입이 험했다.
일본의 한 언론인은 아소 장관을 한마디로 “요시다 시게루를 닮으려 하는 사나이”라고 평했다. 일본 여당에는 ‘도련님 정치인’이 많지만 아소 장관 만큼 화려한 집안을 가진 사람은 드물다.
스즈키 젠코(鈴木善幸) 전 총리가 장인이며, 천황가의 미카사노미야 히로토(三笠宮寬仁) 친왕이 매제다. 더 거슬러 올라가면 메이지(明治) 유신의 공신인 오쿠보 도시미치(大久保利通)가 외고조부이며, 일제시대 가장 악명 높은 강제징용 탄광이었던 아소탄광의 창업자 아소 다키치(麻生太吉)가 증조부이다. 이 탄광은 요시다 전총리를 비롯, 보수 인맥의 돈줄 역할을 했다.
그의 잇따른 망언들은 요시다 전총리의 직접화법을 닮으려 한 데다 일본 주류계층 특유의 자긍심에서 나오는 것으로 분석된다.
도쿄의 한 학자는 “발언을 추적해 보면 뚜렷한 이념보다는 ‘왜 일본이 굽신거리느냐’는 감정에서 비롯된 경우가 많다”고 지적했다.
2001년 3월 12일 소속 파벌인 고노(河野) 그룹 회의에서 ‘부락민’(일본의 천민계층) 출신의 실력자 노나카 히로무(野中廣務) 전 의원의 이름을 거명하며 “그런 자가 일본 총리가 되면 안 된다”고 말해 물의를 일으켰다.
그는 에도(江戶) 막부 말 지사들을 정치가의 모델로 삼고 있다. 일본 유족회 회장인 고가 마고토(古賀誠) 의원 등과 함께 시시카이(士志會)를 결성, 총리를 꿈꾸기도 했다.
요시다 전 총리 등의 영향으로 미국에도 깊은 인맥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총리는 31일 이점을 높이 평가해 그를 임명했다고 밝혔다.
아소 장관은 리덩후이(李登輝) 전 대만 총통의 방일을 적극 추진하는 등 친 대만파이기도 해 이래저래 중국 등 주변 국가들과의 관계 개선은 어렵게 됐다.
“상대방이 전쟁에서 공격해 온다면 이쪽에서 바추카포 정도는 쏴야 한다”(2001년 강연에서)는 등 가끔가다 내지르는 경솔한 발언은 상황을 더욱 악화시킬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아소 장관은 개인적으로 열렬한 스포츠광인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1976년 몬트리올 올림픽 사격부문에 일본 대표로 참가했으며 골프 실력도 준 프로급인 것으로 알려졌다. 가장 좋아하는 것은 만화 읽기에 몰두하는 것이라고 한다.
일본에서 그는 대체적으로 ‘괜찮은’ 정치가로 평가 받고 있다. 한 정치 평론가는 “그는 규슈 남자다운 뚝심에 주위를 어루만지는 인간미를 가진 정치가”라고 평가했다.
그러나 다른 국가 외교 전문가는 “머리는 좋은데 정치가로서 품위가 없다”며 “외교적으로 어떤 평지풍파를 일으킬지 알 수 없다”고 혹평하는 등 국내외의 평가가 엇갈리고 있다.
도쿄=김철훈 특파원 chkim@hk.co.kr
■ 아소 다로 발언록
“상대가 전차로 공격하면 이쪽에서 바추카포 정도는 쏴야 한다”(2001년 대테러대책특별조치법안 관련 강연에서)
“저런 부락민(部落民) 출신자(당시 자민당 실력자인 노나카 히로무)는 일본의 총리가 될 수는 없는 것 아니냐”(2001년 3월 자민당 고노 그룹 회의에서. 일본에서 부락민이란 천민 특수 계층을 의미)
“창씨개명은 조선인이 먼저 원해서 시작됐다”국내외에서 비판이 일자 공식 사과를 했지만 나중에 다시 “사실을 말했을 뿐”이라고 다시 강변함(2003년 5월 도쿄대 강연에서)
“신주쿠 노숙자들을 수용소에 집어넣으면 ‘이 곳 밥은 맛이 없다’며 나가버린다. 정말 풍요로운 시대다. 노숙자도 당뇨병에 걸리는 시대니까”(2003년 10월 자민당 돗토리현 내 강연에서)
“운좋게도, 정말 운좋게도 한국전이 발발했고 그 덕분에 일본 경제 재건에 가속도가 붙었다” “일본의 A급 전범의 굴레는 점령군(미군)이 씌운 것이다. 우리 법대로 하면 그건 위법이다”(2005년 5월 영국 옥스퍼드 대학 강연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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