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먼 래틀(50)이 지휘하는 베를린필의 내한공연이 다음 주로 다가왔다. 7, 8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 등장한다. 전설적인 지휘자 카라얀과 함께 세종문화회관에서 연주했던 1984년 이후 21년 만이다.
베를린필은 자타가 공인하는 세계 최고의 오케스트라다. 자존심 대결을 하는 경쟁자는 빈필이 있을 뿐이다. 래틀은 2002년 9월부터 상임지휘자 겸 음악감독을 맡고 있다. 베를린필은 왜 최고인가. 그리고 래틀의 베를린필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을까.
베를린필의 자부심은 지휘자와 단원을 단원들이 직접 뽑고, 단원 대표인 임기 3년의 이사 2명이 악단을 이끄는 자율적이고 독특한 운영 방식에서 나온다.
상임지휘자는 단원 투표에서 3분의 2 이상 찬성으로 결정한다. 1882년 창단 때부터 지켜온 전통이다. 단원이 되려면 전체 단원들 앞에서 오디션을 치러야 한다.
1~2년 수습기간을 거친 다음 같은 파트 동료단원의 추천을 받아 다시 단원 전체투표를 통과해야 정단원이 된다. 상임지휘자가 프로그램이나 협연자를 선정할 때도 단원 대표의 동의를 얻는다.
단원들이 악단의 조직과 운영, 연주의 전과정을 책임지는 이런 방식 때문에 베를린필은 결코 고분고분한 악단이 아니지만, 누가 지휘봉을 잡든 최고의 연주력을 자랑한다.
영국인 지휘자 래틀을 맞고 나서 베를린필은 두 갈래 큰 변화를 보이고 있다. 하나는 현대음악, 비독일어권 음악으로 레퍼토리를 늘려가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지역사회로 깊이 파고드는 대담하고 혁신적인 교육 프로그램이다.
베를린필이 현대음악 쪽으로 움직이기 시작한 것은 래틀의 전임자인 클라우디오 아바도 시절(1989~2002)부터지만, 래틀은 더욱 박차를 가하고 있다.
이번 내한공연에 포함된 젊은 영국 작곡가 토머스 아데(34)의 ‘아쉴라’는 그가 음악감독으로서 베를린필을 지휘한 첫 무대에서 말러 교향곡 5번과 나란히 연주했던 곡이다. 최근 베를린필 연주에는 핀란드 작곡가 사리아호, 마그누스 린드베리 등 비독일어권 현대음악이 자주 등장한다.
래틀이 시작한 교육 프로그램 ‘Zukunft@Bphil’은 매우 인상적이다. ‘Zukunft’(‘미래’를 뜻하는 독일어)라는 이름에 걸맞게 이 프로젝트는 ‘21세기형 오케스트라’의 역할을 보여준다. 목표는 모든 계층, 모든 세대, 모든 분야의 사람들을 베를린필의 활동에 참여시켜 예술적 감수성 뿐 아니라 적극적이고 비판적인 안목을 키워주는 것이다.
이 작업의 대상은 베를린의 부랑아와 노숙자, 심지어 교도소 수감자에까지 뻗친다. 2003년 1월, 래틀이 지휘한 스트라빈스키의 ‘봄의 제전’에는 터키계 이민자 자녀와 노숙 청소년을 포함한 여러 인종, 계층의 베를린 청소년 250여 명이 안무가의 지도를 받아 무대에서 춤을 췄다. 대부분 클래식음악을 접해 본 적이 없는 아이들이었지만 공연은 성공적이었다.
이들이 무대에 오르기까지 과정을 담은 영화 ‘리듬 이즈 잇’(Rhythm Is It!)은 올해 7월 독일 영화상에서 최고 다큐멘터리상과 최고편집상을 받았다. 내년 6월에는 교도소 수감자들과 함께 하는 두 번째 공연으로 바그너의 오페라 ‘라인의 황금’이 예정돼 있다.
베를린필 단원들이 유치원부터 고등학교까지 학생들을 지도하는 프로그램도 의욕적이다. 2005-2006 시즌에는 중고생들의 쇼스타코비치 교향곡 14번 연구, 베를린필과 학교 오케스트라의 합동연주, 어린이들이 음악ㆍ연극ㆍ미술로 표현하는 라벨의 ‘어미 거위 모음곡’, 수백 명 어린이가 합창과 무용으로 참여하는 카를 오르프의 ‘카르미나 부라나’ 등이 진행된다.
이 야심찬 프로젝트는 “예술은 결코 사치가 아니라 필수이며, 오케스트라는 모든 사람의 것이 되어야 한다.”는 래틀의 신념에 따른 것이다. 도이체 방크가 지원하고, 베를린 시의회와 각급 학교, 사회 문화 단체, 음악 뿐 아니라 미술ㆍ무용ㆍ영화ㆍ문학 등 여러 분야의 예술가들이 여기에 참여해 협력하고 있다.
래틀은 베를린필을 맡고 나서 영국 일간지 ‘가디언’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전통을 무시하는 건 바보다. 하지만 거기서 더 나아가지 않는 것은 두 배로 더 어리석다. 베를린필은 21세기 형 오케스트라가 되어야 한다.”
오미환기자 mho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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