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촌에 ‘그랜드파더(grandfather) 붐’이 몰려오고 있다.” 50여년 전 세계적으로 불어닥친 ‘베이비 붐’으로 인해 지금 진행되는 지구의 급속한 노령화를 일컫는 비유다.
그 중심엔 1946~64년 사이에 태어난 미국의 베이비 붐 세대, 이른바 ‘베이비 부머’가 있다. 미국 인구의 3분의 1인 7,700만명에 달하는 이들은 출생 취학 결혼 취업 승진 등의 각 단계마다 엄청난 시장 충격을 낳았다. 20대엔 베트남전, 50대엔 이라크전 반전시위를 벌이는 기질과 의식 역시 다산(多産)으로 전쟁의 상처를 달래려던 부모세대로선 이해하기 힘든다.
▦46년생인 빌클린턴 전 대통령과 조지 W 부시 대통령 등 선두그룹의 나이가 내년에 60줄에 접어들지만, 이 세대는 정치ㆍ경제ㆍ사회적 역할을 오히려 강화하며 제2의 인생을 즐긴다고 최근 외신이 전하고 있다. 50대를 인생의 황혼기로 여겼던 이전 세대와는 달리 돈, 건강, 관심 등 모든 면에서 풍요롭고 활기찬 까닭이다.
미국 금융자산의 75%를 가진 이들을 잡지못하는 기업은 결코 시장리더가 될 수 없다. 이 나이층의 여성을 겨냥해 화장품을 만들고 51세의 모델을 내세운 프록터 앤 갬블사는 한 예일 뿐이다.
▦일본에는 ‘단카이(團塊ㆍ덩어리) 세대’로 불리는 800여만명의 베이비 부머들이 있다. 1947~49년에 태어난 이들은 60년대 좌파이념에 경도돼 사회의 배척을 받았지만 경제성장의 주역으로서 과실을 향유해온 계층이다.
업무숙련도가 높은 이들은 대부분 2~3년 후면 현직에서 물러나게 되는데, 덩어리 같은 결속력으로 이전 이후 세대와 금을 그은 그들의 자리를 메우는 것은 쉽지 않다. 초고령사회를 눈앞에 둔 일본으로선 사회적 연금부담이나, 기술 노하우의 연속성 측면에서라도 정년연장을 서두르지 않을 수 없다.
▦우리나라의 베이비 붐 세대는 1955~63년에 태어난 사람으로 현재 인구의 16%선인 810만여명이다. 70년대 개발독재체제 하에서 대학을 다닌 이들은 고성장의 견인차이자 수혜자로 역할했지만 산업화와 민주화의 경계에 선 소위 ‘낀 세대’로서 외환위기의 최대 피해자로 남았다.
수시로 불어닥치는 구조조정 칼바람을 비껴간 사람들도 늘 쫓기듯이 살다 보니 노후를 설계할 여유가 없다. 얼마전 현대경제연구원은 ‘한국 베이비붐 세대, 노후대책이 막막하다’는 보고서를 내놓았다. 정책순위에서도 고령화가 저출산에 밀린 듯해 더욱 씁쓸하다.
이유식 논설위원 ys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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