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일부터 아르헨티나에서 개최되는 4차 미주정상회의를 앞두고 남미에 반미 바람이 거세지고 있다. 이 바람은 다음달 대선을 치르는 칠레, 볼리비아에 몰아쳐 남미에 더 많은 반미 정권을 탄생시킬 태세다.
이번 회의는 아르헨 휴양지 마르델플라타에서 쿠바를 제외한 미주 34개국 정상들이 참석한 가운데 열린다. 그러나 여느 때와 달리 주인공은 미국 대통령이 아니라, 반미좌파 정상들이 될 전망이다. 회의 참석을 계기로 남미 순방에 나서는 조지 W 부시 대통령은 역풍을 맞으며 고된 길을 가야 할 것으로 보인다.
회의 의제부터 2억2,000만 남미 빈곤층을 위한 일자리 창출 방안에 초점이 모아졌다. 미국 관심사인 미주자유무역기구(FTAA)의 연말 출범 방안이 합의될 가능성은 적다는 관측이다.
1일 아르헨 회담장 주변에서 벌어진 대규모 시위에선 체 게바라의 사진과 공산당 깃발이 나부꼈다. 같은 날 아르헨 축구영웅 마라도나가 피델 카스트로 쿠바 국가평의회 의장과 가진 반미적 내용의 인터뷰가 TV에 방영됐다. 부시 대통령이 방문할 브라질에서도 반미 시위가 예정돼 있다.
‘뒷마당’이 ‘적지(敵地)’로 변해가는데도 미국은 무력해 보이기까지 한다. 크리스천 사이언스 모니터(CSM)는 2일 “부시 대통령은 순방에서 남미가 더 이상 미국에 얽매이지 않는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반미정서가 새삼 고조된 원인은 미국의 정책 오류, 세계화의 부작용 및 중국의 부상이 꼽힌다. 미국은 베네수엘라의 차베스 정권 축출 쿠데타 기도 때 어정쩡한 대응을 한 뒤 볼리비아에서도 실수를 거듭했다. 아메리카대 로버트 패스터 교수는 “양국 정치에 개입한 미국은 실익도 없이 배후조종자란 이미지만 각인 시켰다”고 지적했다.
또 ‘워싱턴 컨센서스’로 상징되는 미국의 개혁 개방 요구는 남미 경제의 양극화 현상을 악화시켰다는 비판이 높아지고 있다. 여기에 후진타오(胡錦濤) 국가주석의 순방이후 중국의 급속한 접근, 남미공동시장(메르코수르) 등 지역내 연합은 미국의 영향력을 상쇄하는 요인이 되고 있다.
미국은 변화에 아랑곳하지 않고 테러와의 전쟁에만 몰입해왔다. 아르헨 국제경제관계 전문가인 펠리스 페냐는 “국제역학 관계가 변화하고 있다”면서 “미국이 남미에서의 입지를 회복하려면 경제지원 등 적극적조치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12월 치러지는 볼리비아 대선은 앞으로 대세를 가늠할 분수령이 된다. 벌써부터 베네수엘라 대통령이 좌파를 적극 지원하는 가운데 미국은 인접한 파나마에 군대를 파견해 신경전을 벌이고 있다.
이태규기자 tg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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