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BS ‘프라하의 연인’은 가부장제가 지배한다. 상현(김주혁)은 재희(전도연)를 만나자마자 당연하다는 듯 반말을 하고, 사랑한다는 말은 하지 않아도 ‘내 소속’의 여자가 다른 남자에게 손목 잡히는 것은 용납하지 않는다.
또한 재희의 아버지는 그녀를 ‘장남’이라고 부르고, 정ㆍ재계를 대표하는 재희와 영우(김민준)의 아버지는 통솔 방법에 차이는 있을지언정 절대적인 리더십을 가지고 있으며 모두 아내가 없다. 그들에게 필요한 건 남자, 아들, 리더십인 것이다.
이런 환경에서 사는 재희는 가부장제가 원하는 ‘현모양처’를 꿈꾸는 여성이 된다. 그녀는 상현보다 더 바쁠 외교관이지만 상현과 함께 식사하기 위해 점심을 두 번 먹고, 상현의 직장동료와 가족까지 챙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현은 절대로 사랑한다는 말을 하지 않고, 재희는 상현을 ‘열리지 않는 문’이라고 표현할 정도로 힘들어 한다. 그러나 재희는 그 때마다 상현이 던지는 ‘명대사’ 몇 마디에 감동해 다시 상현에 대한 사랑을 불태운다.
‘프라하의 연인’은 마치 멜로드라마의 가장 감격스러운 장면들만 모아놓은 것처럼 끊임없이 벅찬 설렘의 순간을 반복한다. 여자는 무뚝뚝한 남자 때문에 끊임없이 상처 입지만, 그걸 꾹꾹 참다가 가끔 남자가 던지는 한두 마디 말에서 그 남자의 사랑을 느낀다.
이런 구성은 연애의 설렘을 맛보고 싶은 사람들에게 강한 몰입감을 준다. 그러나, ‘프라하의 연인’이 주는 설렘은 ‘사나이’를 자처하지만 사실 매너라곤 없는 무뚝뚝한 남자와, 그 남자의 한두 마디 말에도 행복을 느끼는 여성의 관계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설렘만을 반복할 뿐 더 이상의 관계로 나아가지 못한다. 그들에게 일상이란 없고, 서로의 마음을 들여다볼 기회도 없다. 무뚝뚝하지만 든든해 보이는 남자를 ‘동경’하듯 좋아하는 여자와 그런 여자를 ‘내 소속’으로 두겠다고 생각하는 남자만 있을 뿐이다. 심지어 재희가 상현의 집에 같이 살겠다고 온 순간에도 서로의 일상을 발견하지 못한 채 사랑하느냐 마느냐의 문제만을 두고 다툴 뿐이다.
이렇게 계속 비슷한 상황이 전개되는 가운데 언어유희에 가까운 대사들만 쏟아지고, 드라마는 한없이 가벼워진다. 그래서 재희가 대통령의 딸임이 밝혀지는 순간에도 큰 위기감이 들지 않는다. 어차피 그들은 무뚝뚝한 남자와 사랑을 원하는 여자로 돌아가 ‘명대사 열전’을 반복할 것이기 때문이다.
현실에서나 드라마에서나, 무뚝뚝한 남자를 바라보는 여자의 이야기는 늘 똑같다. 여자는 기대와 체념을 반복하다가 남자의 몇 마디 말에 가슴 설렌다. 그리고, 그 과정이 반복될수록 점점 더 지루해진다. ‘프라하의 연인’이 그 무한 반복을 탈출할 수 있을까. 그러려면 최소한 재희라도 ‘요즘 여자’가 되어야겠지만.
대중문화평론가 lennonej@freech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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