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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원의 길 위의 이야기] 모과의 설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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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원의 길 위의 이야기] 모과의 설움

입력
2005.11.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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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말에 어물전 망신은 꼴뚜기가 시키고, 과일전 망신은 모과가 다 시킨다는 말이 있다. 꼴뚜기는 오징어에 비해 작고 모양도 좋지 않으며, 그렇다고 배를 따서 말릴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당연히 그런 서러움을 받았을 것이다.

과일전의 사정도 비슷하다. 크든 작든 가을 과일들은 하나같이 잘 생기고 알차다. 밤과 대추는 다른 과일에 비해 알이 잘아도 몇 개 손에 들고만 있어도 속이 든든한 느낌이 든다. 빨갛게 익은 사과와 보름달만한 배는 과일전의 으뜸이다.

감은 연시든 곶감이든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다 좋아한다. 껍질이 터진 채 속살을 드러내고 있는 석류도 별미로 귀한 대접을 받는다. 껍질을 까는 공력에 비해 먹을 것이 별로 없는 호도 역시 나 없이 보름을 쇨 수 있냐며 사람들 손 안에서 사랑 받는다.

그 한켠에 울퉁불퉁 얼굴이 못생긴 모과가 놓여 있다. 빛깔과 향은 그윽한데, 다른 과일처럼 그 자리에서 한 입 덥석 깨물어 먹을 만한 것이 못 된다. 딱딱하기가 돌 같은데다 맛도 시어서 저절로 얼굴이 찡그려진다.

그러나 다른 과일은 몰라도 모과는 과일전의 온갖 설움 속에서도 한번 몸을 깔고 앉은 멍석에까지 제 향을 오래 남긴다.

소설가 이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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