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지 W 부시 미 대통령이 31일 사무엘 얼리토(55) 펜실베니아주 제3 순회 항소법원 판사를 은퇴를 선언한 샌드라 데이 오코너 대법관 후임으로 지명했다. 해리엇 마이어스 전 백악관 법률담당 고문의 대법관 지명을 철회한 지 4일만이다.
부시 대통령은 “얼리토 지명자는 연방검사와 판사로서 오랜 공직생활을 통해 풍부한 경험과 능력을 발휘한 미국에서 가장 탁월하고 존경 받는 판사 중 하나” 라며 “상원의 인준을 확신한다”고 밝혔다.
얼리토 지명을 두고 미 언론은 “부시 대통령이 깜짝 카드 대신 안전한 길을 택했다”고 분석했다. 마이어스 지명자는 민주당 측으로부터는 “판사 경험도 없는 부시의 측근”이라고 공격 받았고, 공화당 측은 그를 “보수 색깔이 선명하지 않다”고 반대했다.
미국 언론은 부시 대통령이 얼리토를 지명한 가장 큰 이유로 그의 확실한 보수 색깔을 꼽았다. 1990년 아버지 부시 대통령에 의해 항소법원 판사로 지명된 얼리토는 91년 판결에서 “낙태를 원하는 여성은 반드시 남편에게 미리 알려야 한다”고 밝혔다. 이 판결은 산모 스스로 낙태를 결정할 수 있다는 기존 판결을 뒤집은 것으로 낙태 관련 판결 중 가장 보수적이라는 평을 들었다.
AP 통신은 “얼리토가 존 로버츠 대법원장과 함께 낙태, 인종차별, 사형 등에서 대법원을 확실하게 보수 쪽으로 기울게 할 인물”이라고 예상했다.
얼리토 지명에는 보수계의 반발을 무마하고 지지세력을 결집하려는 부시 대통령의 의도도 엿보인다. 마이어스 지명 후 공화당 내부의 반발에 직면, 지명 철회라는 선택을 해야 했던 부시 대통령으로서는 확실한 보수 성향을 지명, 공화당의 불만을 누그러뜨리려 한 것이라는 분석이다.
또 부시 대통령은 보수계 결집을 통해 리크 게이트로 맞은 집권 후 최대 위기를 극복해 보려는 계산도 담겨 있다. 공화당은 이 날 “대통령이 탁월한 선택을 했다”고 환영했다.
하지만 민주당과 진보 진영은 펄쩍 뛰었다. 민주당 상원 대표 해리 리드 의원은 “절름발이 부시 대통령이 얼리토 지명으로 위기를 넘기려고 했지만 오히려 더 큰 문제를 불러 일으켰다”며 반발했다. 시민 단체들은 소수자의 인권을 소홀히 한 판결을 내렸던 얼리토가 ‘인권 후퇴’를 가져올 지 모른다고 우려했다.
벌써부터 얼리토 지명자의 인준을 놓고 보수와 진보가 대격돌 할 것이라는 예측이 나오고 있다. 민주당 측은 필리버스터(의사 진행 방해) 가능성을 언급하고 있다.
박상준 기자 buttonp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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