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초 미국 캔자스주에서 이른바 ‘BTK살인범’이 체포되자 미국 전역이 들끓었다. 20년 이상 미궁에 빠져 있던 사건이 해결됐기 때문이다.
‘BTK’란 ‘묶어놓고, 고문하고, 살해한다(Bind, Torture, Kill)’는 말의 첫 글자를 따서 살인범 스스로 붙인 이름으로, 그는 1974년부터 86년까지 8명을 연쇄 살인했다. 경찰이 수 십년 동안 수사를 포기하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은 살인죄에 대한 공소시효가 없었기에 가능했다.
▦ 1986년부터 91년까지 10명이 살해돼 한국판 ‘BTK’라 불리는 화성연쇄살인 9차 사건의 공소시효가 14일 끝난다. 마지막 사건의 공소시효는 내년 4월2일까지다. 그러나 DNA분석결과 9차 사건과 10차 사건의 범인은 다른 사람이었다.
어쩌면 9차가 연쇄살인 진범이 저지른 마지막 사건인지도 모른다. 2주일 후 범인이 나타나 “내가 진범이다”라고 소리쳐도 법의 심판대에 세울 수 없게 된다. 온 국민의 기억에서 잊혀지지 않는 ‘개구리 소년’ 실종ㆍ사망사건 공소시효도 5개월이 채 남지 않았다. 실종 11년 여 만인 2002년 유골을 발견해 타살로 잠정결론이 났으나 수사는 사실상 중단됐다.
▦우리나라 공소시효는 외국보다 짧다. 현재 사형에 해당하는 범죄는 15년, 무기징역은 10년, 장기 10년 이상의 범죄는 7년이다. 미국은 살인죄의 경우 연방법에서 공소시효를 두고 있지 않다. 일본은 지난해 공소시효가 만료된 살인범들이 잇따라 자수해 논란이 일자 공소시효를 15년에서 25년으로 늘렸다.
독일의 살인죄 공소시효는 30년이다. 특히 미국과 독일은 미성년자 성범죄에 대해서는 공소시효를 정지하고 있다. 어린이 성폭력의 경우 성인이 되어서야 피해를 깨닫는 경우가 많다는 것을 감안한 조치다.
▦공소시효 목적 가운데 하나는 시간이 지나면 증거능력이 떨어진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DNA분석 등 수사기법이 발달한 요즘은 사정이 다르다. 영화 ‘살인의 추억’의 실제 형사인 하승균 경기경찰청 수사지도관은 “극악한 범죄에 대해 공소시효 15년은 너무도 짧다”고 탄식한다. 그는 8차 사건 발생 후 연쇄살인범에게 편지를 썼다.
“천사 같은 소녀였다. 제대로 꽃도 한번 피워보지 못한 어린 소녀. 열세 살이었다. 알고 있느냐, 네가 죽인 그 소녀는 이제 경우 열세 살이었다…” 범인은 지금도 어디에선가 희미하게 웃고 있을지 모른다.
이충재 논설위원 cj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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