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키스탄 발라코트의 한 사진관 터에서 검게 그을린 시신 5구가 무더기로 나왔다. 아빠와 엄마 3자녀가 발견된 것은 10월 30일이었다. 8일 아침 가족은 추억을 담으러 갔다가 건물이 무너지는 바람에 함께 묻혔다. 23일만에 발굴됐다.
파키스탄 북부에 대지진이 휩쓸고 간지 1일이면 한 달째. 발라코트는 주택 90%가 무너지는 등 피해가 극심했다. 복구는 더디다. 수십 년, 아니 수백 년이 걸릴지 모른다. 군인과 주민은 망치와 톱으로 마냥 건물잔해를 쪼개고 철근을 갈라내고 있다.
정확한 사상자 숫자도 없다. 파키스탄 정부는 3만, 현지인은 6만명이라 한다. 확실한건 여전히 수많은 시신이 악취를 풍기며 건물 밑에 깔려있다는 것 뿐. 30분이면 돌아볼 수 있는 조그만 도시의 모습은 보름 전의 참상과 비극, 그대로다. 하지만 땀냄새 배인 삶의 숨결들이 조금씩 돌아오고 있다.
주민들은 돌무더기 속과 허물어진 서까래 틈에서 일상을 회복해 가고 있다. 야외이발소가 부서진 주택 처마 아래 자리를 잡고, 야채상와 과일장수, 잡화행상이 활력을 불어넣고 있다. 도로가 뚫린 뒤부턴 남쪽 도시로 떠나는 시외버스에도 손님이 있다.
먼저 폐허로 돌아온 건 야외이발소. 무슬림 남성에게 수염 손질은 목숨과 같다. 뭇 사내들은 면도를 하면서 잠시나마 현실을 잊는다. 신문 가판대도 모습을 드러냈다. 덥수룩한 수염을 기른 노인들이 몰려들었다.
셰이크(성직자) 오스만(54)씨는 “한 달 만에 신문을 읽게 됐다”며 “지진피해에 대한 정부의 대응과 다른 지역 소식이 궁금하다”고 했다. 학교도 문을 열고 전화도 터지기 시작했다.
한국일보사와 고려대의료원이 함께 꾸린 ‘파키스탄 재해지역 의료봉사단’의 야외병원 역시 의료시설이 남지 않은 발라코트에 소중한 빛으로 자리잡았다. 이날도 주민 200여명이 다녀갔다.
김승주(고대 안산병원 외과 교수) 단장은 “일가족이 찾아와 약을 타가는 모습이 안쓰럽다”면서 “위생 상태가 좋지 않아 지속적인 치료가 필요한 환자가 대부분이어서 우리가 떠난 이후가 더 문제”라고 걱정했다.
사람들은 이제 월동준비에 바쁘다. 비좁은 텐트에 구호품과 약을 차곡차곡 모으고 옛날 살던 집터에서 가재도구를 건져내기 위해 안간힘이다. 눈이 오기 시작하면 발라코트로 이어지는 모든 도로가 막힌다.
우리에겐 낯설지만 발라코트는 파키스탄이 자랑하는 여름 휴양지. 자부심도 대단하다. 그러나 신 앞에선 겸손하다. 발라코트가 고향이라는 발라더드(34)씨는 언덕 위에 서서 도시의 전경을 내려보았다.
“보세요. 사람의 것은 모두 망가졌지만 자연의 것인 히말라야산맥은 높고, 꾼강은 쉴새 없이 흐릅니다. 신의 뜻이죠.” 마을 곳곳에서 저녁밥을 짓는 연기가 피어 오르고 있었다.
발라코트(파키스탄)=글ㆍ사진 고찬유기자 jutda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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