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대통령이 최근 총리에게 ‘국무위원 인선 권한 이양’을 제안한 것은 대통령 중심의 국정운영 틀을 크게 바꿔보려는 구상에 계속 집착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 같은 발상은 헌법에 명시된 총리의 각료 제청권을 보장하는 차원을 뛰어 넘어 총리가 실질적으로 각료를 인선하고 내각을 통할하도록 하겠다는 뜻을 담고 있다.
이는 한나라당에 내각 구성권을 넘기겠다는 대연정 제안이 불발하자 대안으로 제시된 측면이 있다. 노 대통령이 여전히 권력구조 개편의 연장선상에서 고민과 구상을 하고 있음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대목이다.
따라서 노 대통령이 ‘내년 초 나의 진로를 밝히겠다’고 언급한 것도 권력구조 문제를 염두에 둔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청와대는 “탈당, 개헌, 임기 단축, 거국 내각, 권력 이양, 국민투표 등 정치적 승부수와는 관련이 없다”고 선을 그었으나 이를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기는 어렵다.
노 대통령은 2003년 4월 국회 연설에서도 “17대 총선에서 과반 의석을 차지한 정당에게 내각 구성권을 이양하겠다”고 밝히는 등 오래 전부터 우리 헌법의 내각제적 요소를 강화하는데 관심을 가져왔다. 각료 인선권 이양 제안도 같은 맥락으로 볼 수 있다. 그 직접적 의미는 일상적 국정 운영에서는 2선으로 후퇴하겠다는 것이고, 이면에는 내각제나 이원집정부제 개헌 추진의 분위기조성 차원의 고려도 있는 듯 하다.
일각에서는 이 제안은 모든 장관이 아니라 우리당 출신 장관들의 인선에만 해당되는 것이라는 얘기도 나온다. 정동영 통일, 김근태 보건복지장관 등이 우리당으로 복귀할 경우 이 총리가 주도적으로 후임 인선 작업을 함으로써 당내 갈등 진화에도 앞장서 달라는 뜻이 담겨 있다는 것이다.
총리에게 넘기려고 한 각료 인선 폭이 어느 정도인지는 분명하지 않지만 노 대통령은 이 총리를 신뢰하고 부쩍 힘을 실어주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이를 감안하면 이 총리가 각료 인선권을 고사했지만 연말 또는 내년 초의 개각 때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할 것으로 관측된다.
김광덕 기자 kdkim@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