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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권력과 이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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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권력과 이성

입력
2005.10.3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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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과 국제 언론은 지난 1주일이 부시 미 대통령에게 집권 이후 최악의 시간이라고 규정했다. 이라크 침공 명분이 거짓임을 확인시킨 ‘리크 게이트’로 정권의 도덕성이 땅에 떨어진 데다, 판사 경력도 없는 측근을 대법관에 지명했다가 의회의 거센 반대로 철회하면서 권위와 신뢰가 치명상을 입었다는 지적이다.

집권 2기 대통령에 흔한 스캔들 징크스를 거론하는 것이 한가하게 들릴 정도로 통치기반 자체가 무너졌다는 논평까지 나온다.

■리크 게이트는 부통령 비서실장 루이스 리비가 CIA 비밀요원 발레리 플레임의 신분을 언론에 누설(leak)하는 위법행위를 저지른 사건이다.

그러나 핵심은 부시 정부가 이라크 침공 명분으로 내세운 핵개발 주장이 거짓임을 은폐한 것이다. 플레임의 남편 조지프 윌슨은 전직 국무부 대사로, CIA의 의뢰로 이라크가 핵 물질을 수입한 의혹을 조사한 뒤 근거가 없다는 보고서를 냈다.

그러자 리비 비서실장은 윌슨이 아내의 사주를 받았다며 플레임의 신분을 언론에 흘렸다. CIA의 반대를 무릅쓰고 전쟁을 밀어붙인 체니 부통령 등 백악관이 조직적으로 개입한 의혹을 받는 이유다.

■리크 게이트는 리비 실장이 흘린 정보를 개인적으로 전파한 뉴욕 타임스 기자가 특별검사에게 정보원 공개를 거부해 구속되면서 정보원 보호논란에 초점이 맞춰졌다.

그러나 특검이 리비를 기소하고 권력 핵심을 겨냥하면서 정권의 총체적 신뢰성이 도마에 올랐다. 이미 여론은 부시 집권이래 가장 낮은 지지로 권력의 부도덕성을 심판했다. 최근 조사에서 나타난 여론지지도 39%는 섹스 스캔들로 얼룩진 클린턴 대통령 말기보다 낮은 것이다.

■2년 가까이 계속된 특검 수사가 충격을 던진 것은 이라크 전쟁에 대한 국민의 염증이 확산된 탓이 크다. 그러나 의회의 공화당 세력까지 반기를 든 것은 부시가 오랜 측근이란 것 밖에 내세울게 없는 해리엇 마이어스 법률보좌관을 대법관에 지명한 무모함이 결정적 요인이 됐다.

판사 경력이 없어 보수세력에게 중요한 낙태 문제 등에 대한 입장 조차 알 수 없는 인물을 지명한 것은 잇단 정책 실패에 아랑곳 없이 대통령 권력에 집착한 독선이라는 비판이다. 이에 따라 부시가 레임 덕을 피하려면, 무엇보다 권력의 이성을 되찾아야 한다는 충고다.

강병태 논설위원 btk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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