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의성군 안평면 천등산 자락에서 고속도로에 들어온 멧돼지 떼가 승용차에 치어 일가족 새끼 5마리가 한꺼번에 죽었다.
30일 오후 9시50분께 중앙고속도로 부산기점 165.5㎞ 지점. 대구에서 계모임을 마치고 카렌스 승용차로 집(경북 안동시)으로 가던 윤모(50)씨는 화들짝 놀랐다. 전조등을 켜고 오른쪽으로 굽은 도로 2차로를 시속 90~100㎞로 달리던 중 30~40㎙ 앞에서 20여 마리의 크고 작은 멧돼지들이 기어가는 것을 목격한 것. 급히 브레이크를 밟았으나 ‘쿠쿵! 쾅!’하는 소리와 함께 차가 요동치는 것을 느꼈다. 정신을 가다듬으며 핸들을 꽉 잡고 500여㎙ 앞 갓길에 차를 세웠다. 식은땀이 흐르고 있었다. 되돌아 가 보니 멧돼지들이 널부러져 있었다. 몸길이 80~90㎝(생후 5~6개월)짜리 5마리가 피를 흘리고 있었다. 나머지 멧돼지는 모두 어디론가 달아난 듯 했다.
윤씨는 무사했지만 부인(46)은 충격으로 다리를 약간 다쳤다. 차량은 앞 범퍼가 파손됐다. 10분쯤 뒤 같은 장소를 지나던 또다른 승용차 1대도 길바닥에 쓰러진 멧돼지들에 부딪혀 차가 크게 흔들리다 급정거 했다.
윤씨는 “멧돼지들은 고속도로에 들어온 뒤 빠져나갈 곳을 찾지 못해 1, 2차로를 헤매고 있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윤씨의 신고를 받고 출동한 한국도로공사와 고속도로순찰대 관계자는 5마리의 멧돼지들이 즉사한 것을 확인하고 일단 사체를 가드레일 밖에 모아두었다. 도로공사 관계자는 “다음날 아침 시체를 처리하러 다시 가보니 심하게 훼손된 1마리를 제외한 나머지 4마리는 누군가 가져가 버렸더라”면서 “남은 1마리는 인근 야산에 매립했다”고 말했다.
관계자는 “현장 부근에 동물과 사람이 이동할 수 있는 연결통로(지하박스)가 설치돼 있지만 이를 찾지 못하고 가드레일이 없는 곳으로 들어온 것 같다”며 “고라니나 너구리 등이 ‘로드킬(road kill)’을 당하는 경우는 많지만 멧돼지가 떼가 차에 치여 한꺼번에 죽은 일은 처음”이라고 말했다. 또 “일처다부제 형태의 가족단위로 생활하는 멧돼지의 습성으로 볼 때 죽은 5마리는 모두 ‘형제자매’임이 틀림없다”고 말했다.
윤씨의 경우 고의나 중대한 과실이 없기 때문에 별다른 처벌은 받지 않으며 부서진 앞 범퍼도 보험으로 자손처리가 가능하다. 다만 가드레일이 열려져 있었음을 이유로 보험사가 도로공사에 구상권을 청구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다.
의성=정광진 기자 kjcheo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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