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공학 KOREA 세계가 주목.”
며칠 전 여러 신문에 비슷한 제목의 기사가 큼지막이 실렸다. 내용을 살펴보면 “국제적인 과학 저널에 우리나라 과학자의 논문이 잇따라 게재돼 세계 과학계의 주목을 끌고 있다”며 “특히 한국 생명과학의 막강한 성장세를 보여주고 있다”라는 것이다.
기사는 이어서 “네이처, 사이언스, 셀 등 3개 저널을 통틀어 단 한편의 한국 논문이 실렸던 1996년에 비해 2000년 6건, 2004년 16건으로 급증했고 올해 6월10일까지만 11편이 실렸다”라고 하면서 미국에 등록된 우리나라 생명공학 특허 역시 2000년 이후 85% 성장했다고 지적했다.
우리나라의 생명과학이 앞으로 엄청난 성과를 거둘지 장담할 수 없지만 도약대 위에 올라선 것은 부인하기 어려울 것이다. 생명과학이 이 정도까지 발전한 것은 무엇보다도 어려운 여건에서 묵묵히 연구실을 지켜온 수많은 선배 과학자들과 지원인력이 있었기에 가능했고, 그 점은 지금도 마찬가지다.
●정부의 과도한 개입은 역효과
난치병을 치료하고 산업적 성과를 기대할 수 있는 생명과학ㆍ의학 분야가 줄기세포 한 가지인 것은 전혀 아니다. 줄기세포만 강조하는 것은 사실의 엄청난 왜곡이고 연구자들의 의욕을 꺾는 행위다.
성체줄기세포는 몇 가지 질병에서 동물실험 단계를 지나 임상시험을 하고 있지만 아직 걸음마 단계다. 배아줄기세포는 가야 할 길이 더욱 멀다. 반환점을 돈 것이 아니라 출발선을 떠난 것이다.
1998년 세계 최초로 배아줄기세포를 얻어낸 미국의 제임스 톰슨은 아예 환자 치료에 쓰일 가능성이 별로 없다고 한다. 그런데도 필수적인 동물실험조차 거치지 않은 채 벌써 환자 등록을 받겠다는 데에는 어안이 벙벙할 따름이다.
사태가 이렇게 된 것은 국가가 생명과학에 지나치게 개입해 왔기 때문이다. 국가는 과학을 지원하되 좌지우지하려 해서는 안 된다. 과학 발전의 방향은 전문가와 시민사회에 맡겨야 한다. 사상과 이념이 국가이데올로기가 될 때의 폐해를 우리는 나라 안팎에서 수없이 보아왔다.
과학이 ‘국가과학’이 될 때도 마찬가지다. 한 가지 예만 들자. 스탈린은 유전학에도 개입하여 통치에 적합하다고 생각한, “획득형질은 유전한다”라는 뤼센코의 주장에 손을 들어주고 다른 학설은 모두 이단시하였다. 그 결과 학문의 자유를 잃은 소련의 유전학은 퇴보할 수밖에 없었고 소련 과학(자)은 온통 조롱과 경멸의 대상이 되었다.
수많은 사람의 피와 눈물로 민주화를 이룬 대한민국을 스탈린 시대의 소련에 비교할 바는 아니다. 하지만 생명과학 분야에서는 그럴 위험이 없지 않다. 국가기구로부터 가장 자유로워야 할 국가생명윤리심의위원회조차 국가가 장악하려는 모습만 보아도 우려를 떨쳐낼 수 없다. 우리나라가 진정한 생명과학의 메카가 되려면 이 점부터 바로잡아야 할 것이다.
나치의 인체실험을 단죄한 뉘른베르크 전범 재판 이래 인체를 이용하는 연구와 시술에 대해서 엄격한 감시 절차가 마련되었으며 생명과학의 발전에 따라 더욱 정교해졌다. 그에 따라 연구자는 연구계획부터 연구를 마칠 때까지 소속 연구기관에 설치된 기관심의위원회(IRB)의 심의를 받아야 한다.
또 연구자는 신체 전부 또는 난자 등 일부를 제공하는 사람에게 제공을 강요해서 안되고 금전 등의 대가를 주어서도 안 된다. 이런 것은 어떤 명분이나 핑계도 통하지 않는 철칙이고 오래 전부터 ‘글로벌 스탠다드’이다.
●생명윤리 가볍게 보면 큰 낭패
“생명공학 KOREA”를 세계가 주목한다는 것은 언제든지 허점만 보이면 “사다리 걷어차기”를 할 수 있다는 말이기도 하다. 위기가 기회이듯이 기회는 위기이기도 하다. 생명윤리를 강조하는 것은 생명의 고귀함 때문이지만, 사다리 걷어차기를 당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는 경고이기도 하다.
도약대 위에 올라선 지금이 연구자, 시민사회, 국가기구가 제 몫을 다하여야 할 때이다.
황상익 한국생명윤리학회장ㆍ서울대 의대 교수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