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민대회…단식…막판 홍보전 과열
중저준위 방사성폐기물처리시설 주민투표일(11월2일)이 이틀 앞으로 다가오면서 과열ㆍ혼탁 양상이 극에 달하고 있다. 유치신청을 한 경북 경주시 포항시 영덕군과 전북 군산시는 단식농성과 대규모 집회를 통해 막판 홍보전을 벌이고 있다. 주민투표가 지역대결 양상으로 바뀌면서 망국적인 지역감정론도 다시 고개를 들어 후유증이 예상된다.
지방자치단체 홍보전 방폐장 유치전에 나선 4개 지자체는 일요일인 30일 대부분의 공무원들이 출근해 투표 참여를 독려했다. 31일에도 취약지역과 부동층을 상대로 맨투맨식 설득작업을 펴고 대규모 군중대회를 열어 찬성률을 올린다는 계획이다.
포항시국책사업유치위원회는 31일 오후 포항종합경기장 앞에서 3,000여명의 시민들이 참여하는 결의대회를 연다. 범영덕군방폐장유치위원회도 이날 오후 영덕군민운동장에서 명예군민인 탤런트 최불암, 코미디언 배일집, 가수 설운도 조영남 혜은이 등 연예인을 초청해 영덕군민 방폐장 승리대회를 개최키로 했다.
이종근 경주시의회 의장은 27일부터 경주역 앞에서 삭발단식농성을 하면서 유치전을 지휘하고 있고, 경주생활체육협의회는 31일 오후 8시 서천(西川)둔치에서 대규모 유치결의대회를 열기로 했다.
군산국책사업추진단은 최근 여론조사에서 찬성률이 라이벌인 경주시에 앞선 것으로 나오자 30일 가두 홍보를 통해 ‘1972년 황금사자기 결승전 명승부의 감동을 33년 만에 방폐장으로 부활시키자’며 시민들을 설득하고 있다.
강현욱 전북도지사도 31일 군산시에서 방폐장 유치 기자회견을 열어 군산시민을 대상으로 찬성투표를 호소하고 정부의 특정지역 편들기 비판할 계획이다.
지역간 대결 군산시와 경주시는 지역감정을 앞세운 대결을 벌이고 있어 후보지 결정 후에도 후유증이 만만치 않을 전망이다. 경주시는 “태권도공원을 정치적 음모로 전북에 빼앗겼다.
방폐장은 전북에 빼앗길 수 없다” 고 지역감정을 자극했다. 군산시도 경주시에 비해 찬성률이 뒤진다는 내부여론조사결과가 나온 10여일 전부터는 ‘배터진 경상도 지금도 배고프냐? 방폐장 양보해라’ ‘반대세력은 경상도로 가라’는 등 지역감정을 조장하는 원색적인 구호의 플래카드가 도심을 뒤덮고 있다. 경주시는 군산시내에 걸린 플래카드 사진 18개를 담은 유인물을 대량으로 인쇄해 홍보전에 활용하고 있다.
물리적 충돌 29일 오전 군산시 나운3동사무소에서는 방폐장을 취재하던 MBC 기자들과 군산시 공무원들간의 몸싸움이 빚어져 양측이 고발하는 사건이 발생하기도 했다.
MBC는 이날 취재진 3명이 “공무원들이 동사무소에서 찬성률을 높이기 위한 대책회의를 한다”는 제보를 받고 잠입취재를 시도하다 현장에 있던 공무원들에게 폭행당하고 카메라 등 방송장비와 휴대폰를 뺏겼다고 보도하고 해당 내용을 경찰에 고발했다. 군산시공무원들도 취재진을 주거칩입 등 혐의로 경찰에 고발했다.
28일 오전에는 유치반대단체 회원 20여명이 “찬성단체 유인물이 부재자 투표소에 있다”며 경주시 감포읍사무소 2층 부재자투표소에 한 방송사 기자를 대동해 나타났으나 선관위는 자작극이라며 강력 반발하고 있다.
찬성률이 어느 정도? 유치전이 과열되면서 찬성률은 당초 예상보다 높아질 전망이다. 10여일 전까지는 찬성률이 경주시_군산시_영덕군_포항시 순이었던 것으로 알려졌으나 지역감정이 불붙으면서 현재 오차범위내지만 군산시_경주시_영덕군_포항시로 역전됐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각 지자체는 당초 찬성률이 80% 내외면 유치가 가능할 것으로 보았으나 지금은 90% 이상, 일각에서는 95%는 돼야 가능할 것으로 점치고 있다.
포항ㆍ영덕=이정훈기자 jhlee01@hk.co.kr 경주=정광진기자 kjcheong@hk.co.kr 군산=최수학기자 shchoi@hk.co.kr
■ '국가정책' 주민투표론 두번째
11월2일 실시되는 주민투표는 방폐장 부지 선정이라는 중요한 국가정책을 주민이 직접 결정하는 기회다. 2004년 7월 주민투표법이 발효된 이후 제주도 행정구역 개편에 관한 주민투표에 이어 두번째로 실시되는 국가정책 관련 주민투표다. 주민투표법은 중요 국가정책에 대해 중앙행정기관이 주민투표 실시를 요구하면 지자체장이 이를 발의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더욱이 방폐장 부지 선정이 굴업도, 안면도, 부안 등 숱한 후보지 선정 시도 및 주민 반발로 19년간 표류할 만큼 대립과 갈등이 극심했던 문제였다는 점에서 11월2일 주민투표의 의미는 매우 크다고 할 수 있다.
이번 주민투표를 통해 방폐장 부지 선정이 매듭지어진다면 새로운 국정운영의 모델이 될 수 있다. 즉 새만금 간척사업, 천성산 터널공사, 경인운하 건설 등 정부와 지역주민(또는 환경단체)간 갈등으로 지지부진한 국책사업에 대해 주민투표가 실시될 가능성이 있다.
대한상공회의소에 따르면 새만금 간척사업은 30개월간 공사 중단으로 1조2,000억원, 천성산 터널공사는 3개월간 공사 중단으로 6,300억원의 손실을 빚은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방폐장 부지 선정 주민투표는 경주, 군산, 영덕, 포항 등 4개 지역 지자체장이 지방의회의 동의를 얻어 8월 산자부에 유치를 신청함으로써 10월4일 발의됐다.
정부는 투표권자 3분의 1 이상이 투표하고 투표자 과반수의 찬성표를 획득한 지역 중 찬성률이 가장 높은 지역을 후보 부지로 선정한다. 여론조사결과 찬성률이 50%를 넘지 못하는 경우는 없을 전망이다.
김희원기자
■ 부재자투표 신고율 최고 39% 부정시비·선거불복 우려
정부가 방폐장 부지 선정을 위한 주민투표일을 앞두고 벌써부터 후속 대책 마련에 분주하다. 일요일인 30일에도 산업자원부, 선거관리위원회 직원들은 경주, 군산, 영덕, 포항 등 4개 유치 신청 지역 상황을 면밀히 살펴보는 등 바삐 움직였다.
10월4일 4개 지역 지방자치단체장들이 주민투표를 발의한 이후 방폐장 관련 이슈는 방폐장 자체가 아닌 선거관리 문제에 모아졌다. 특히 부재자투표 신고율이 최고 39.4%로 여느 선거의 10배 수준을 넘자 초반부터 과열, 부정 시비가 불거졌다. 방폐장 후보 지역 선정이 투표 찬성률로 결정되는 만큼 정부로서는 선거불복 사태가 없도록 하는게 최대 관건이다.
이 때문에 산자부는 선거운동 시작에 앞서 4개 지역 지자체장 협의회를 소집, 공정선거와 선거결과 승복을 다짐토록 했다. 선관위는 대리투표 시비를 막기 위해 30일까지 6일간 이례적으로 부재자 투표소를 설치, 우편 발송이 아닌 투표소 투표를 유도했다. 또 일부 지역에서 본인 의사와 달리 부재자 신고가 돼있거나 부재자 회송용 봉투 수거 과정에서 부정행위가 개입됐다는 의혹이 제기돼 수사가 진행중이다.
국가정책을 결정하는 주민투표는 주민투표법에 따라 행정소송을 통해 무효화할 수 있는 길이 없다. 하지만 지역간 찬성률 차이가 현재 수사 대상으로 떠오른 표 수보다 적을 만큼 미미하다면 찬성률을 근거로 유치지역을 선정한다는 정부의 원칙은 상당히 위협받게 된다.
정부가 가장 우려하고 있는 것도 바로 이 가능성이다. 실제 부재자 투표가 허위로 신고돼 다른 사람이 투표한 사례가 드러난다면 투표 당일 투표 및 개표 과정에서 물리적 충돌이 일어날 가능성도 있다. 선관위의 엄정한 관리가 필요한 대목이다.
돌발상황만 없다면 투표결과는 3일 새벽 2~3시께 집계가 완료될 것으로 선관위는 보고 있다. 선관위는 투표결과를 각 지자체에 통보하고 정부는 3일 오전 국무총리 주재로 열리는 관계장관 회의에서 방폐장 부지를 선정ㆍ발표한다. 산자부 관계자는 “표 차이가 문제되지 않을 정도의 수준이라면 투표 직후 곧바로 후보지 선정을 발표해 불확실성의 여지를 남기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산자부가 주민투표로 선정된 지역을 전원개발사업 예정구역으로 지정해 고시하면 사업자인 한국수력원자력㈜가 과학기술부에 건설운영 허가를 신청한다. 이어 부지특성조사, 방사선환경영향평가, 안정성분석 등의 절차를 거쳐 2007년에 방폐장 건설이 시작된다.
정부는 방폐장 유치에 실패한 지역에 대한 지원책도 검토중이다. 이해찬 총리는 지난 25일국무회의에서 공정선거 관리와 탈락 지역에 대한 후속조치를 지시했으며, 산자부는 탈락 지역에 대한 지원 대책을 검토하고 있다.
김희원 기자 h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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