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가 멀다 하고 돌아오는 제사에 각종 대소사를 챙겨야 하는 종부(宗婦)들의 삶은 예나 지금이나 고단해요.” “동네 아줌마들과 어울려 편하게 수다 떠는 일은 상상도 못하지만 그래도 종가 며느리라고 하면 대하는 태도가 달라집니다.”
전국에서 손꼽히는 명문 종가의 맏며느리들이 ㈔전북향토문화연구회가 29,30일 전북 전주시에서 개최한 ‘명가 종부들의 전주 나들이 초청행사’에 참석해 그들만의 애환을 털어놓았다. 엄격한 가풍 속에 생활하며 느꼈던 보람과 어려움들을 얘기하며 우리의 소중한 전통문화를 되돌아보고 그 정신을 널리 알리기 위한 자리였다.
이번 행사에는 행주대첩의 영웅 권율(안동 권씨) 장군의 12대 종부 마귀분(64ㆍ경기 고양시)씨와 반계 유형원(문화 유씨)의 11대 종부 이강숙(59ㆍ경기 남양주시)씨, 임시정부 부통령을 지낸 이시영(경주 이씨)의 손부 이영희(58ㆍ경기 남양주시)씨, 조선중기 문신 김집(광산 김씨)의 13대 종부 임영숙(53ㆍ충남 논산시)씨 등 20여명이 참석했다. 대부분 공신과 명신, 일제와 광복 후 민족지도자, 저명한 학자 등 명문가의 가통을 지키고 있는 주인공들이다.
김집의 13대 종부 임씨는 “시대는 바뀌었지만 명문 종가의 종부라는 자리는 고생길’’이라며 “자부심 하나로 어려움을 이겨나가고 있다”고 말했다. 25세 때 중매로 남편(김선오ㆍ57ㆍ논산시 동부농협 이사)을 만났다는 임씨는 그 동안 집안 어른들의 위패가 봉안된 사당을 관리하고 종중의 대사를 두루 챙기면서 말 한마디, 몸가짐 하나도 함부로 할 수 없는 극도의 긴장 속에 살아왔다”고 털어놓았다. 권율 장군 12대 종부인 마씨는 “종부의 최대 덕목은 집안을 아우를 수 있는 넉넉한 마음”이라며 “항상 절제하고 온화한 모습을 지키려는 태도는 각박한 현대사회에서도 필요한 덕목”이라고 강조했다.
이들은 이틀동안 경기전 한옥마을 풍남문 등 전주시내 문화유적지를 둘러본 데 이어 전북 남원시 만인의총과 전북 장수군 논개 생가를 방문한 후 고단한 삶의 현장으로 돌아갔다.
전북향토문화연구회 이치백 회장은 “우리나라 명문가의 전통과 명예를 지키고 있는 종부들의 의식과 행동을 통해 많은 것을 깨달을 수 있는 계기가 됐다”고 말했다.
전주=최수학기자 shcho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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