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기부 예산 1,200억원을 여당 선거자금으로 전용했다는 이른바 ‘안풍 사건’에 대해 대법원이 국고 손실 등 혐의로 기소된 강삼재 전의원과 김기섭 전 안기부 운영차장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이 자금을 사실상 김영삼 전 대통령의 비자금으로 판단한 것이다. 그렇다면 다음은 김 전 대통령이 이 돈을 어디서 마련했는지 출처를 밝혀내는 것이 당연한 수순이다.
방법은 김 전 대통령이 진상을 떳떳이 공개하고 검찰이 수사에 응하는 길 밖에 없다. 먼저 김 전 대통령은 재임시 강조하던 ‘역사 바로 세우기’ 차원에서 있는 그대로의 사실을 털어놓고 국민에게 용서를 구해야 한다. 전두환, 노태우 두 전직 대통령의 수천억대 비자금을 밝혀내 감옥까지 보낸 그가 정작 자신의 비자금 문제에 입을 닫는다면 이는 국민을 모독하는 행위다.
검찰은 김 전 대통령의 해명에 관계없이 전면 재수사에 나서 진상을 규명해야 한다. 법률적으로도 공소시효가 남아있어 수사를 하지 않을 명분이 없다.
그러나 검찰은 “10년 이상 지나 관련자 진술이나 은행 거래 자료 등 증거 찾기가 불가능할 것”이라며 소극적인 자세를 보이고 있다. 수사를 잘못한 사실이 명백히 드러났는데도 책임을 인정하지 않고 추가수사도 하지 않겠다면 엄연한 직무유기가 아닌가.
사건 초기부터 지적된 부실 수사 의혹을 보더라도 검찰은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다. 문제의 돈이 김 전 대통령의 비자금이라는 주장이 제기됐지만 검찰은 국고수표 등을 근거로 안기부 자금으로 몰아붙여 정치적 의혹을 샀다.
그러니 항소심에서 “김 전 대통령에게 직접 받았다”는 강삼재 전 의원의 폭탄선언 한마디로 범죄사실이 여지없이 무너진 것 아닌가. 거액의 불법자금 사용을 밝혀내고도 돈의 출처는 미궁으로 놔두는 것은 검찰의 무능을 자인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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