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리안 닥터, 슈끄리아! (한국의 의사 선생님, 감사해요!)”
파키스탄인은 도와줘도 그다지 감사의 말을 하지 않는다. 이슬람에 묻혀 사는 시골은 특히 그렇다. 이슬람의 5대 교리는 가난한 자, 아픈 자에게 도움을 주는 것이 의무라고 가르친다. 사랑의 인술(仁術)을 펼치는 한국 의료진도 감사의 말을 듣기란 쉽지 않다. 현지인 입장에선 외국인 의사의 치료 역시 당연한 것이기 때문이다.
한국 의료진은 “정성껏 치료해줬는데 무뚝뚝하게 가버리면 낯설고 서운하다”고 했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 신뢰가 쌓이면 사람도 변하는 법이다. 한국일보와 고려대의료원이 함께 꾸린 파키스탄 재해지역 의료봉사단(단장 김승주ㆍ고대안산병원 외과 교수)의 현지 병원 2곳은 차츰 “슈끄리아(감사해요)”이란 인사로 채워지고 있다.
의료봉사단은 발라코트 야외병원에 이어 29일(현지시간) 아보타바드의 아유브종합병원 앞마당에 ‘아름다운 병원 2호’를 세웠다. 의료봉사단은 파키스탄 북부의 허브병원인 이곳에서 병원 내 중환자 진료와 수술을 도울 예정이었다. 하지만 밀려드는 환자를 그냥 돌려보낼 수 없는 노릇이었다. 25인용 천막 2개를 덧대 만든 공간이 병원으로 변신하기 무섭게 수백여명이 줄을 섰다.
환자들은 현지 병원보다 더 정성스럽게 치료해주는 한국 의사들에게 차츰 호감을 보였다. 30일에도 350여명의 환자가 2호 병원을 다녀갔다. 노경선(정형외과) 전임의가 수술일정까지 잡으면서 ‘병원 안의 더 좋은 병원’으로 자리를 잡고 있다. 다리가 부러진 모가르쉐크(43)씨는 “지금까지 여러 나라 의사에게 치료를 받았지만 코리안 닥터가 최고”라며 엄지손가락을 들어보였다.
이 때문에 자원봉사를 자처하는 현지인도 늘고 있다. 통역을 돕는 칸(32)씨는 “한국에 있을 때 고대안산병원에서 큰 수술을 했는데 도움을 많이 받았다”며 보은을 하러 왔고, 앗사르(25)씨는 “파키스탄 정부도 외면하는 일을 해줘 고맙다”며 병원의 질서유지를 도맡았다.
이날 1호 병원인 발라코트 야외병원에도 200여명이 다녀갔다. 피부가 많이 벗겨진 생후 6개월짜리 아기 자완(29일자 9면)은 급한 대로 장현(성형외과) 전임의로부터 뼈가 드러난 이마를 꿰매는 수술을 받았다.
이제 지진의 직접 피해로 인한 환자는 30% 수준이다. 노숙을 하는 터라 옴과 감기 등 간접 피해를 당한 환자가 급격히 늘고 있다. 그들에겐 아름다운 병원 2곳이 감사의 모스크다.
아보타바드(파키스탄)=글ㆍ사진 고찬유기자 jutda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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