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에서 요즘 잘 팔리는 가전제품은 단연 대형 액정 텔레비전이다. 샤프, 소니뿐 아니라 한국의 유명 업체들까지 합세해 얇고 멋진 디자인의 대형액정(혹은 플라스마형) TV로 서민들의 주머니를 노리고 있다. 저렴하지 않은 가격임에도 일본인들의 필수품으로 부상 중이다.
이처럼 일본에서 대형 액정 TV가 인기를 끄는 이유는 인터넷이라는 미디어 등장 이후에도 좀처럼 시청시간이 줄어들지 않는 일본인들의 ‘텔레비전 편애 현상’때문으로 분석된다. 일본인들의 하루 평균 TV 시청시간은 3시간 25분 정도로 최근 20년간 그다지 감소하지 않았다. 인터넷 등장 이후에도 마찬가지이며 오히려 약간 증가하는 경향까지 보인다.
올해 실시한 한일 가정방문 비교조사에 의하면 일본인 대부분이 일어나자마자 TV를 켜고 집에 누군가가 있는 동안은 항상 TV를 켜두고 있었다. 이런 경향은 일본만의 특징은 아닐 것이다. 일본인들은 집중해서 보지 않더라도 항상 TV를 켜두고 시계나 라디오, 배경 음악처럼 사용한다든지 하는 형태가 거의 일상화되어 있다.
한국 가정은 젊은 층이 인터넷의 편리함과 즐거움을 강조하는 있는 반면, 일본에서는 인터넷의 경우 원하는 정보를 적극적으로 찾아가야 하기 때문에 번거롭다는 말이 많았다. TV는 인터넷보다 오락성과 정보성에서 훨씬 탁월한데다 집에서 편하게 쉬면서 즐기기에 가장 적합한 미디어라 생각하고 만족도도 높았다.
더욱 흥미로운 것은 TV가 단란한 가정을 위해 꼭 필요한 미디어라고 생각한다는 점이었다. 그런데 실제로 일본 가정에서는 NHK의 연구에서도 밝혀진 것처럼 혼자서 TV를 시청하는 비율이 매년 증가하는 추세이다. 이번 조사에서도 가족들이 함께 모여 TV를 보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회사원들은 귀가 시간이 밤 10시가 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조사 대상 가정에서 아버지가 없는 저녁 식사는 너무나 당연한 일상이 되어 있었다. 다른 가족 구성원들의 경우도 귀가 시간이 제각각이어서 함께 얘기도 나누면서 TV를 보며 저녁 식사를 하는 화목한 모습은 거의 찾아 볼 수 없다.
점점 사라지고 있는 단란한 가족 풍경을 귀환시키는 힘, 그것은 역시 TV밖에 없다는 일본인들의 작은 희망이면서 동시에 환상일 수밖에 없는 인식이 존속되는 한 대형 액정 TV의 열기는 당분간 계속될 것 같다.
김상미 일본 도쿄대 사회정보대학원 연구조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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