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팀을 맡고 2~3년 안에는 우승하지 않겠나 싶었는데 그만 첫 해에 우승해 버렸네요.”
프로야구 정상을 정복한 삼성 라이온즈의 선동열 감독은 올 시즌 처음 지휘봉을 잡은 ‘초보 감독’ 이다. 그러나 새내기답지 않은 안정된 리더십을 발휘해 지도자로서도 ‘국보급’으로 대성할 가능성을 보였다는 것이 야구계의 평가다.
우승 후 숨 돌릴 틈도 없이 다음달 10일 일본에서 열리는 한국 일본 대만 중국 등 4개국 프로야구 우승팀들이 벌이는 코나미컵 아시아시리즈에 대비해 훈련에 들어간 선 감독을 26일 대구구장서 만났다.
선 감독은 “위태위태했지만 결국 우승까지 하게 됐다”며 “5년 감독 계약에 장기 마스터플랜을 세워 팀을 꾸려왔는데 우승은 그 과정의 일부일 뿐”이라고 말머리를 열었다.
“감독을 맡은 후 팀이 60~70%는 변했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지금도 변화시키고 있는 과정이기 때문에 내년에는 더욱 달라진 모습을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선 감독은 “그동안 투수 쪽에 매달렸는데 내년에는 공격에서도 변화를 줄 것”이라고 말했다. ‘어떻게 공격이 달라질 수 있냐’는 질문에는 “묻지만 말고 일단 보면서 느끼라”고 대답했다.
그가 올해 삼성 사령탑을 맡은 후 팀은 많이 달라졌다. 큰 경기에만 나서면 쉽게 주눅이 들고 패퇴해 버리는 것이 예전의 삼성이었다면 올해는 그런 모습을 거의 찾아 보기 힘들었다. 자신감이 넘치는 선수들은 위기에서도 좀체 흔들리지 않고 상대 팀을 압도했다. 그 결과 1~2점 차 승부에서 이긴 경우가 부쩍 늘어났고 단기전에도 강해졌다.
많은 사람들은 올해 삼성이 한국시리즈에서 두산을 4-0으로 쉽게 셧아웃시켰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선 감독 생각은 다르다. “모두 박빙의 승부였습니다. 4연승이라 쉽게 이긴 것 같지만 한경기 한경기가 힘들었지요.” 실제 시리즈 기간 덕아웃의 선 감독은 입술이 마르고 겉으로 드러나진 않지만 승부에 가슴 졸이는 긴장감이 묻어 나왔다. “정규리그에서 올해는 예년처럼 쉽게 이기고, 또 쉽게 지지도 않았죠.” 그런 과정을 반복해서 겪은 삼성은 한국시리즈에서도 마찬가지였다. 3할대 타자 한명 없이도 정상에 올랐다. 그만큼 선수들이 팀플레이를 했다는 의미다.
“처음 부임 후 삼성 선수들을 보니 자신감이 없었어요. 극복하는 방법은 단 하나 많은 훈련입니다.” 그는 선수들을 훈련장으로 내몰았다. 투수들에게는 전지훈련에서 하루 3,000개 이상의 공을 던지게도 할 정도였다. “자기 볼에 자기가 자신감도 없이 컨트롤하지 못하면 어떻게 타자를 제압할 수 있겠느냐”는 것이 그의 지론이다.
지난해 두산 감독으로 갈 뻔도 했던 선 감독. 이 얘기가 나오자 마땅찮은 표정부터 짓는다. “두산이 성의없이 감독직을 제의한 것 아닌가요. 당시 이미 감독을 내정해 놓고 제 이름이 거론된 것이지 싶습니다.” 선 감독은 “SK, LG 등 그전부터 감독 제의는 몇 차례 있었다”고 털어놨다. 결국 김응용 삼성 사장이 전부터 “같이 일해 보자”고 제의한 것을 계속 뿌리쳐 오다 이 때서야 받아들였다. 수석코치로 시작한 삼성과의 인연은 그렇게 이루어졌다.
“우선 코치를 거치면서 배워서 하자는 생각을 했습니다. 일단 공부해야지요.” 일본프로야구 주니치 시절 2군으로 내려가본 경험과 2군 지도자 생활도 큰 도움이 됐다. 눈물 젖은 빵을 먹는 선수들의 심정을 선 감독은 안다. 김재하 삼성 단장의 표현대로 ‘민주공격형 합리적 카리스마를 갖춘 감독’이라는 말은 그래서 나왔다. 본인 자신도 “명선수가 명감독이 못 된다”는 공식은 거부한다.
선 감독은 또 초보감독이라는 말을 좋아하지 않는다. “제가 코치 1년만에 40대에 감독이 됐는데 빠른 게 아닙니다. 김응용 사장이 언제부터 감독했는지 아세요? 20대부터예요.” 김재하 단장이 “10년간 감독을 맡길만하다”고 얘기한 데 대해서는 “직접 듣지는 못했지만 구단이 현장을 믿고 밀어주는 것에 감사하다”며 “한해 한해 최선을 다하는 것이 할 일”이라고 말했다.
“삼성을 올해 보다 더 단단하고 좋은 팀으로 만드는 것이 숙제입니다.” 선 감독은 그래서 내년 봄 훈련캠프는 다른 팀들 보다 앞서 열 계획이다. “오르는 것 보다 지키는 것이 더 힘들기 때문”이라는 그는 ‘다른 팀들이 삼성과 야구하면서 1, 2점 내는 것이 이렇게 힘들구나 하고 느끼게 만드는 것’을 목표로 제시했다.
시즌을 마친 지금 선 감독은 지난 해처럼 자유계약선수(FA) 시장에서 비싼 선수들을 사오는데 큰 관심이 없다. 오히려 2군을 활성화해 유망한 선수들을 발굴, 조련해서 키우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일단은 일본에서 열리는 4개국 야구 대항전인 코나미컵만 생각하고 있습니다. 일본(롯데 마린스)을 꼭 꺾고 싶습니다. 그런데 어째 오늘 인터뷰가 왜 이리 몰리나요!” 선 감독은 이날 하루에만 니혼게자이신문 등 10여개 언론사 인터뷰를 소화해야만 했다. 걋幻?마신 술이 깨지 않았다”는 선 감독은 텁텁한 목소리로 “우승 보다 비슷한 얘기를 여러 번 반복해야 하는 인터뷰가 더 힘들다”며 즐거운 비명을 질렀다.
글ㆍ사진 대구=박원식기자 park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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