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턴가 아파트 현관을 경비원 아저씨 대신 카드 키 출입문들이 가로막아 너무 불편합니다. 그 많은 문들을 어떻게 열고 들어갈지 걱정이네요.”
조선자(62)씨는 올해로 25년째 인구주택총조사 조사원으로 참여하고 있다. 인구주택총조사는 정부가 1960년부터 5년마다 한번씩 전국적으로 실시하는 대규모 가구ㆍ주택ㆍ생활환경 조사. 조씨의 조사원 활동은 1980년 시작됐으니 올해로 벌써 여섯 번째다. 서울 성동구에서 활동했던 첫 해를 제외하면 지금 살고 있는 관악구 봉천6동이 그녀의 주무대다.
“봉천동에는 맞벌이 가구가 많아서 낮에는 거의 조사를 못해요. 밤에 혼자 다니며 남의 집 문을 두드리는 게 쉬운 일은 아니지요. 특히 산동네 판자촌에서 아파트 단지로 빠르게 변해온 지역이라 주소지를 찾아가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닙니다.”
조씨는 지금까지 수많은 가정을 방문했지만, 2000년 만난 젊은 부부를 아직도 잊지 못한다. 이른바 명문대학을 나오고도 일자리를 구하지 못했던 이 부부는 조사차 방문한 조씨가 어머니 같았는지 “일도 하고 돈도 벌고 싶은데, 두 아이 우유 값도 못 벌고 있다”며 눈물을 흘렸다.
조씨는 젊은 부부가 너무 안쓰러워 당시 회원으로 활동하던 적십자봉사회를 통해 6개월 동안 쌀을 지원했다. 다행히 이 부부는 얼마 후 일자리를 찾았고, 울산으로 내려간 지금까지도 조씨를 ‘어머니’라고 부르며 인연을 이어가고 있다.
“올해 모두 170세대의 문을 두드려야 하는데 체력이 뒷받침해 줄지 모르겠네요. 자물쇠가 두꺼워진 세상인 줄 알지만, 더 좋은 나라를 위한 일인 만큼 문을 활짝 열어줬으면 고맙겠습니다.”
올해 인구주택총조사는 10만5,000명의 조사원이 투입돼 11월1~15일 실시된다.
김신영 기자 ddalg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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