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년 전 여름 부부는 생계도 팽개치고 길을 떠났다. 무엇에 홀렸는지 남편은 조선 시대의 옛길을 찾아보자고 아내를 꾀었다. 아내는 “뭘 해도 못 먹고 살겠느냐”며 흔쾌히 따랐다.
2001년 6월 부부는 보름 동안 고산자 김정호 선생의 ‘대동여지도’의 옛길을 따라 ‘영남대로(부산 동래~서울)’ 950리를 걸었고, 이듬해 여름에는 열이레 동안 ‘삼남대로(전남 해남~서울)’ 970리를 밟았다.
옛길은 철길이나 고속도로에 잘리고 아스팔트로 덧씌워졌거나 폐도로 변해 있었다. 하지만 부부는 두 발로 전국 곳곳의 잊혀진 옛길을 찾아내 한 땀 한 땀 바느질하듯 걸었다.
이렇게 4년째 옛길에 ‘미쳐’ 있는 이 부부는 경기 의정부시에 사는 김재홍(47) 송연(36)씨다. 부부는 그간의 답사 여정을 담아 최근 ‘옛길을 가다(한얼미디어 펴냄)’라는 제목의 책을 냈다. 책은 옛길 답사기이자 지리ㆍ문화 변천사를 기록한 인문지리서이다.
부부의 옛길 탐사는 5년 전 우연히 본 신문기사가 계기가 됐다. 2000년 운영하던 카페를 팔고 쉬고 있던 김씨는 인도 배낭여행을 준비하면서 체력 훈련차 도보 여행에 나섰다.
“민통선과 동해안을 거쳐 울산, 포항까지 내려오면서 우리 땅이 얼마나 매력적인가 뒤늦게 깨달았습니다. 그러다 우연히 1997년 한 지방신문 기자들이 ‘대동여지도’를 들고 직접 한양에서 부산 동래까지 뻗은 옛길을 탐사해 쓴 ‘영남대로 일천 리’란 기사를 봤지요.”
그 후 1년간 의주대로(서울~의주), 경흥대로(서울~김화), 수원별로(서울~수원 건릉), 통영별로(서울~통영) 등 10개 옛 길에 대한 기초 조사를 끝내고 도보 여행에 나섰다. 주로 여름 한철 동안 도보 탐사를 하고 나머지 계절은 옛 문헌과 고지도를 뒤지며 자료 조사를 했다.
김씨는 책에서 조선의 문화ㆍ경제를 이어주던 한양 천릿길이 일제의 의해 어떻게 왜곡됐는지, 국토개발이라는 미명 아래 어떻게 옛길들이 파헤쳐졌는지 자세히 보여준다. 옛 길에는 이순신 장군의 자취도 있었고, 동학농민군의 함성과 유배가는 다산 정약용 선생의 흔적도 있었다.
부부의 여행기는 인터넷 홈페이지(www.jayuchon.com)에도 올렸는데 옛길을 걷고 싶어하는 사람들에게 길라잡이 역할을 하고 있다.
부부는 경제적인 이유로 도보여행을 접고 지금은 의정부 역 근처에서 ‘옛길 따라’라는 카페를 운영하고 있다. 건물 3층이라는 불리한 조건을 무릅쓰고 가게를 인수한 이유도 조선시대 한양에서 러시아까지 이어지던 가장 긴 옛길인 ‘경흥대로’에 접해 있기 때문이었다.
“길을 걷다 보니 과거의 길이 어떻게 현재까지 이어졌고, 미래는 어떤 길이 어떻게 놓여야 하는지 어렴풋이 알겠더군요. 또 미래의 우리 삶은 어떠해야 하는지도 길을 걸으며 깨닫곤 합니다.”
옛길을 탐사하면서 김씨는 나름대로 길 위의 철학을 터득했다
김씨 부부는 돈이 마련되는 대로 다시 옛길 탐사에 나서, 북녘 땅의 옛 길도 꼭 밟아보고 싶다고 했다.
김명수기자 lecer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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