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0년대와 60년대를 배경으로 한 영화나 드라마를 보면 젊은 남자들이 중절모를 쓰고 등장한다. 신진 정치인들의 모습도 그렇고, 거리를 휘젓고 다니는 깡패들의 모습을 봐도 그렇다. 20대 초중반의 젊은이들도 유행처럼 흰 중절모를 쓰고 다닌다. 중절모의 띠 색깔만 여러 색이다.
지금은 늙으셨지만, 아버지도 그 시절 20대 청춘이셨다. 청춘이지만 나이가 서른 되었을 때 이미 네 아이의 아버지였다. 요즘 같으면 신문에도 나고 방송에도 나갔을 것이다. 아버지의 친구들 대부분이 그랬다. 그 시절 사진 속의 아버지는 늘 흰 모자를 쓰고 있다. 20대 초반의 모습도 그렇게 의젓할 수가 없다. 그 때에도 아버지는 이미 두 아이의 아버지였다.
그런 아버지의 사진에 비하면 내 20대의 사진은 온통 장발의 모습뿐이다. 서른 두 살에 찍은 사진도 아버지의 스물 두 살 적 모습보다 의젓하지 못하다. 그 시절 아버지들은 젊어도 왜 하나같이 그렇게 의젓하실까.
일찍 결혼을 해서일까. 아니면 인생의 초반에 일제의 식민지와 해방과 육이오 같은 큰 일들을 두루 겪어서일까. 또 그것도 아니면 아들의 눈엔 아버지의 어느 시절 모습도 늘 크고 근엄하게 보여서일까.
소설가 이순원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