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집요한 외교노력으로 미국산 쇠고기 금수조치에 대한 동아시아권의 국제연대가 급속히 허물어지고 있다. 이에 따라 내년 상반기에는 우리나라도 미국산 쇠고기 수입 금지조치를 해제할 수 밖에 없을 것으로 관측된다.
28일 농림부와 외교통상부에 따르면 최근 태국과 일본 등 2003년 말 미국 워싱턴주에서 광우병 감염 소가 발견된 직후 우리나라와 함께 금수조치를 취했던 국가들의 수입 재개 움직임이 본격화하고 있다.
동아시아 ‘금수연대(禁輸連帶)’를 최초로 깬 것은 태국이다. 태국은 20일 미국 쇠고기 수입금지 조치를 해제한다고 전격 발표했다. 태국은 2003년부터 미국과 자유무역협정(FTA) 체결 협상을 벌이고 있는데, 최근 막바지로 치달은 협상 국면에서 양보를 얻어내기 위해 금수조치를 해제한 것으로 보인다.
미 농무부도 태국의 수입금지 해제 조치가 발표되자마자 성명서를 통해 “미국 쇠고기의 안정성이 입증됐으며, 일본 한국 중국 등도 태국을 본받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태국의 이탈로 명분을 얻은 미국은 최대 시장인 일본을 압박, 24일 사실상 수입 재개 결정을 받아냈다. 일본 식품안전위원회는 이날 생후 20개월 이하 소의 뇌와 척수 등 광우병 위험부위를 제거하는 조건이라면 미국산 쇠고기도 일본산 쇠고기와 ‘위험도 차이가 거의 없다’는 내용의 보고서를 채택했다.
일본 정부는 이를 토대로 국민여론 수렴절차를 거쳐 12월께 수입을 재개할 것으로 예상된다. 현재 미국 상원은 일본 내부에서 더 이상 수입 반대 움직임이 일어나지 않도록 금수 조치가 연내 철폐되지 않으면 일본산 제품에 31억 달러의 관세를 부과하는 법안 제정을 추진하고 있다.
태국과 일본의 이탈로 한국은 미국의 최우선 공략대상국이 됐다. 우리나라는 2003년 미국산 쇠고기 24만8,000톤(8억8,600만 달러)을 수입, 아시아에선 일본에 이어 두 번째로 큰 시장이었다. 정부 관계자는 “26~28일 미국 워싱턴에서 열린 한ㆍ미 통상현안 점검회의에서 미국이 쇠고기 문제를 최우선 논의대상의 하나로 삼았다”고 말했다.
주무 부서인 농림부도 겉으로는 “국민의 안전과 직결된 사안인 만큼 충분한 시간을 두고 과학적 근거에 따라 검토할 것”이라는 입장이지만, 내심 고민의 기색이 역력하다. 태국 일본 등의 조치로 미국의 요구를 거부할 명분이 사라졌으나, 수입재개 여부를 결정하는 가축방역협의회를 서둘러 열 경우 외부 압력에 굴복한 것으로 비쳐질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농림부의 유보적인 태도에도 불구, 미국에서 광우병이 추가 발생하지 않는 한 우리나라도 내년 상반기에는 일본의 뒤를 따르게 될 수 밖에 없을 것이라는 전망이 힘을 얻고 있다.
조철환 기자 chch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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