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세계적으로 조류독감과 독감 대유행에 대한 우려가 한층 고조되고 있어 우리나라가 이에 대한 대비를 잘하고 있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2003년 말부터 아시아의 가금류에서 유행하고 있는 고병원성 H5N1 조류독감이 다가올 대유행 독감의 가장 유력한 후보라는 증거는 매우 많다.
우선 동남아에서 조류독감은 사람에까지 전염되어 121명의 감염자와 62명의 사망자가 발생하는 등 근절되기 어려운 상황이 됐다. 더구나 동남아발 조류독감은 올해 중순 이후 러시아, 카자흐스탄 및 몽골에까지 퍼졌고, 최근 터키 및 루마니아를 거쳐 유럽 대륙을 위협하고 있다.
얼마 전 동남아 조류독감 바이러스의 유전자가 1918년 스페인 독감 바이러스와 매우 유사하며, 돌연변이가 더 진행되면 스페인 독감처럼 유행할 수 있을 것이라는 연구 결과가 발표되면서 조류독감의 대유행 가능성이 점차 가시화하고 있다.
●사람간 전파 능력 시간문제
조류독감은 사람 간 전파 능력 획득이라는 대유행의 마지막 빗장만을 남겨두고 있다. 이 빗장마저도 바이러스 유전자 변이에 의해 풀릴 수 있으므로 대유행 발생은 시간문제라 할 수 있다. 특히 동남아 조류독감은 감염자 사망률이 50%나 돼 스페인 독감의 2.5%에 비해 병독성이 매우 강하다.
실제 조류독감 대유행 시에는 이보다 사망률이 낮아질 것으로 예상하지만 그래도 문제는 심각하다. 치료제는 매우 부족하며 조류독감 백신은 아직 개발 중이다. 피해가 어떨지 예측 불가능한 실정이다. 결국 독감 대유행으로 인한 피해 규모는 우리가 얼마나 철저히 대비하는가에 달렸다.
세계보건기구(WHO)는 독감 대유행에 대하여 각국이 자국 실정에 맞는 구체적이고 실행가능 한 대비책을 수립할 것을 강력히 권장하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나라는 독감 대유행에 대비해 무엇을 점검해야 할 것인가?
예상컨대 조류독감은 국내에서 발생하기보다는 유행지역인 동남아, 중국으로부터 여행객 또는 철새를 통하여 유입될 가능성이 크다.
따라서 여행객에 대한 조류독감 예방 교육 및 입국 시 검역, 철새와 가금류의 접촉을 차단하는 조치가 필요하다. 조류독감 치료제인 타미플루는 독감 대유행 초기에 희생을 최소화하고 조류독감 백신을 생산할 수 있는 시간을 버는 역할을 하게 된다. 대유행으로 인구의 15~35%가 감염되는 것에 비하면 국내 비축 70만 명분의 타미플루는 매우 부족하다.
대유행 시 타미플루 처방의 우선 대상자를 미리 정해놓아 사용과 관련된 혼란을 사전에 예방하는 일도 필요하다. 일례로 독감의 고위험군 환자와 의료인을 포함한 사회안전유지 필수인원이 우선 대상자이다.
조류독감을 막는 가장 확실한 예방책은 조류독감 백신이다. 이미 선진 10여 개국에서는 조류독감 백신개발에 나섰으며, 미국에서는 사람을 대상으로 한 임상시험을 마치고 이르면 내년 초에 시판할 예정이라고 한다.
우리나라는 아직 조류독감 백신개발에 착수하지 못하고 있는데, 독자적으로 개발하기에 시간이 촉박한 만큼 기술이 확보되어 있는 다국적 백신회사와 협력하는 것을 고려해볼 필요가 있다.
●행동지침 포함 철저한 대비를
또 독감이 대유행 하기 시작하면 국가 재난사태에 해당하므로 정부 각 부처는 그에 따른 행동지침을 마련해야 한다. 특히 의료기관에는 환자가 대거 몰려 수용능력을 벗어날 수 있으므로, 이에 대비해 학교 또는 지역 실내체육관과 같은 별도의 수용 시설 마련 계획을 세워야 한다.
조류독감 대유행에 대하여 과도한 공포심을 가지거나 별것도 아닌데 유난을 떠는 게 아닌가 하고 경시하는 양극단의 자세는 위험하다. 지금은 최악의 상황을 가정하여 이미 밝혀진 과학적인 사실을 바탕으로 포괄적이고 치밀한 대비책을 세우고 실제 행동에 옮길 때다. 우리가 진정 두려워해야 할 것은 독감 대유행이 아니라 그에 대한 대비가 철저하지 못함이다.
김우주 고려대 의대 구로병원 감염내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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