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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세상/ 인류의 위협자 '바이러스 삶과 죽음 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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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세상/ 인류의 위협자 '바이러스 삶과 죽음 사이'

입력
2005.10.2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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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8년 스페인 독감의 위력은 글자 그대로 살인적이었다. 수개월 만에 전 세계적으로 2,000만 명 이상의 사망자를 냈다는 게 좀 먼 나라 얘기 같다면, 당시 일본의 사망자를 예로 들어보자.

일본에서는 전체 인구의 40%에 해당하는 2,400만 명이 이 독감에 감염되어 39만 명이 숨졌다. 역사상 어떤 전쟁이나 재앙도, 심지어 어떤 질병도 이보다 단기간에 이만한 사람의 목숨을 앗아가지 못했다.

에이즈(AIDS), 유행성 출혈열, 사스(SARS), 조류독감…. 인간은 지금 바이러스와 전쟁 중이다. 하지만 그 전쟁에서 승리할 것이라고 누구도 장담할 수 없다.

1892년 러시아의 생물학자 이바노프스키가 담배 모자이크 바이러스를 처음 발견한 뒤로 100년이 넘었다. 1938년 독일의 물리학자 루스카가 전자현미경으로 이 바이러스의 모습을 처음 보여주어 세계 생물학계를 발칵 뒤집어 놓은 뒤 70년이 가까워 온다.

하지만 아직까지 인간은 오로지 ‘자기 복제’를 위해 무차별로 인체를 공격하는 이 바이러스에 무력하다. 생물이라고 하기에도 적잖은 결함을 가지고 있는 이 비운동성 물질을 막는 최선의 대책이 고작 감염원과 접촉을 아예 차단하거나 백신을 이용해 인체의 면역력을 키우는 정도에 불과하다. 변종이 워낙 쉽게 생겨나기 때문에 그마저도 그리 효과적이지 못하다.

세계보건기구가 대재앙을 낳을지도 모른다고 늘 경고하고, 실제로 바로 곁에서 우리의 목숨을 위협하고 있는 바이러스를 하지만 우리는 별로 알지 못한다.

미생물학자인 이재열(55) 경북대 교수가 ‘바이러스 삶과 죽음 사이’를 쓴 것도 그 때문이다. 바이러스란 도대체 무엇이고, 인간을 위기로 몰아가는 바이러스는 어떤 것이 있으며, 인간과 바이러스가 상생할 수 있는 길은 없을까를 설명한다.

이 교수에 따르면 일반 세포처럼 핵막으로 둘러싸인 핵과 여러 소기관을 가진 진핵생물 곰팡이와 기생충, 핵막이 없고 소기관이 다소 부족해 진핵생물보다 격이 떨어지지만 엄연히 생물인 세균(박테리와)과 달리 바이러스는 유전정보를 지닌 핵산(DNA나 RNA)과 이를 둘러싼 단백질 껍질이 가진 것의 전부다.

생존에 필요한 에너지를 만들거나 물질의 대사를 위한 어떤 도구도 없고, 오로지 숙주세포에 침투해 들어가 그곳의 여러 도구를 활용해 자신을 복제하며 증식한다.

숙주 없이는 무생물에 가깝지만, 숙주세포만 있으면 생물 흉내를 내기 때문에 바이러스를 ‘생물과 무생물의 중간 존재’로 부르는 사람도 있다. 바이러스가 숙주로 삼는 것은 인간만이 아니다. 바이러스는 동물은 물론이고 식물, 심지어 세균까지도 자기 증식에 이용한다.

이 책은 바이러스 상식을 풍부하게 담고 있다. 감기는 아데노바이러스나 리노바이러스, 코로나바이러스 같은 여러 종류의 바이러스들이 일으키는 데 비해, 독감은 인플루엔자 바이러스가 발병원이다.

인플루엔자 바이러스는 변이가 쉬운 RNA 바이러스이며 전염성이 강하고 대개 세균성 폐렴을 비롯한 2차 질병이 뒤따른다. T세포 백혈병에서는 암의 종양 유전자와 레트로바이러스 유전자가 관련 있는 등 바이러스는 암세포 활성화에 영향을 미친다.

이 책의 장점은 무엇보다도 일반인들이 교양과학으로 바이러스를 쉽게 알 수 있도록 설명했다는 것이다. ‘공 모양을 한 바이러스의 모습이 바로 바람 빠진 축구공의 모습과 똑같다. 바이러스에는 똑 같은 크기의 소단위 단백질들이 5개씩 혹은 6개씩 모인 덩어리가 축구공의 가죽 조간처럼 이웃해서 어울려 있다.’ 인간과 바이러스가 상생하는 길은 물론 인간의 몫이다.

‘바이러스에 대해 더 많은 지식을 찾아내고 바이러스가 살아가는 길을 생각하고 만약 잘못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보이는 것이라면 과감히 방향을 바로잡아 주어야만 한다.’

● 바이러스에 대해 더 알고 싶다면…

이재열 교수가 더 읽을 거리로 추천하는 바이러스 책이 몇 권 있다.

미국의 과학 저널리스트 지나 콜라타가 쓴 '독감'(안정희 옮김ㆍ황금가지 발행)은 스페인 독감의 발생 원인을 소설처럼 흥미진진하게 추적한 책이다. 새로운 이 질병에 대처하려는 과학자들의 분투가 생생하다.

'바이러스'(토마스 호이슬러 지음ㆍ최경인 옮김ㆍ이지북 발행)는 세균 잡는 바이러스 '박테리오파지' 이야기이다. 현대의학은 항생제를 남용한 결과 신종 박테리아의 대대적인 반격을 받아 막다른 골목으로 몰리고 있다며 바이러스를 이용해 세균을 죽이는 파지 요법을 대안으로 제시한다.

'보이지 않는 권력자'(사이언스북스 발행)는 바이러스를 포함한 미생물 전반을 쉽게 설명한 이 교수의 전작이다.

김범수기자 bs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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