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남북 경제협력 사업을 총정리하는 11차 남북경협추진위(경협위)가 28일 개성에서 열렸지만 성과 없이 끝났다. 이번 회의는 북측의 무리한 지원요구와 약속 미이행이 남북 경협을 가로막는 주요 걸림돌임을 재확인하는 자리였다.
경협위는 이날 이례적으로 합의문을 내지 못하고 대신 공동보도문을 통해 논의사항을 공개했다. 공동보도문의 골자는 남측의 경공업지원과 북측의 지하자원 개발 문제를 계속 협의하고, 북측의 약속이 이행되지 않고 있는 수산협력, 철도ㆍ도로 연결사업, 임진강 수해 방지 대책문제 등도 추후 논의한다는 것이다. 제자리걸음인 셈이다.
이런 답보상황은 북측의 무리한 요구 때문에 비롯됐다. 북측은 내년부터 5년간 해마다 신발 비누 의류 등 소비재를 생산하기 위한 원자재를 제공해달라고 요구했다.
문제는 그 액수가 1,700억원에 달한다는 점이다. 구체적으로 신발 6,000만 켤레분 원자재, 비누와 의류 원자재 각각 2만톤, 3만톤인 것으로 전해졌다. 이는 올 8월 10차 경협위에서 남측이 경공업 원료를 제공하면 북측이 지하자원을 개발해 대가를 치른다는 합의에 따라 제기된 것이다.
통일부 당국자들은 “협상 중이어서 북측 주장을 공개할 수 없으며 원자재 수준을 어느 정도로 하느냐에 따라 금액도 달라진다”면서 “어쨌든 북측 요구는 남측 능력을 넘어서는 것”이라고 말했다. 북측의 요구가 최종안이 아니라 협상용이라는 점에서 수정될 가능성이 높지만, 당분간 껄끄러운 난제로 남게 될 전망이다.
전문가들은 “문제는 북측의 지원 요구량이 아니다”며 “북측이 돈과 원료만을 요구하지 않고, 남북이 함께 북측의 경공업 활성화계획을 입안하고 활로를 모색하는 방식을 택하면 문제풀이가 수월해질 수 있다”고 말했다. 북측 경제에 대한 남측의 개입이 구조적으로 정착되면 남측으로서는 얼마든지 융통성을 발휘할 수 있다는 것이다.
북측이 무조건 더 얻어내고 보자는 자세를 고집할 경우 ‘남측의 원자재 지원_북측의 지하자원 보상’이라는 새 경협방식은 큰 진전을 기대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아울러 이날 경협위에서는 북측이 올 6월 이후 약속했던 서해상의 어업협력, 철도 도로 연결 시범운행, 임진강 수해방지 등을 전혀 이행하지 않은 대목도 집중 제기됐다. 북측은 군사적인 부분이 많다면서 합의를 미루고 있다.
올 6월 정동영 통일부 장관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면담을 계기로 활성화됐던 남북 경협 논의가 뚜렷한 성과 없이 한해를 넘기게 됐다.
이영섭기자 young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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