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망울이 맑다. 하지만 가녀린 몸은 파르르 떨리고 있었다. 고통을 호소할 힘이 없다. 모든 게 버거울 뿐이다. 뼈까지 드러난 이마, 피부가 모두 벗겨진 손. 놀라는 건 아기가 아니라 그를 치료하겠다는 의사와 간호사다.
자완은 생후 6개월 밖에 되지 않았다. 아기는 엄마와 집을 잃었다. 8일 오전 파키스탄 북부를 뒤흔든 강도 7.6의 대지진은 이기의 고향 발라코트를 쑥대밭으로 만들었다. 주택 90%가 무너졌고 5만여 명이 죽거나 다쳤다. 아빠는 간신히 탈출했지만 엄마와 아기는 함께 묻혔다.
아기는 30시간 만에 무덤으로 변한 집 더미에서 살아 나왔다. 우연히 무너진 집에 들렀던 삼촌은 지하에서 새어 나오는 아기의 울음소리를 들었다.
식구들이 총동원돼 손이 찢어지도록 돌을 치우고 땅을 팠다. 엄마는 아이를 꼭 끌어안고 숨져 있었다. 지진으로 인한 돌더미도 모성을 짓밟지는 못했다.
하지만 상처는 남았다. 고열인데다 먹으면 토하고 설사까지 한다. 피부도 모두 벗겨졌다. 그렇게 3주나 방치됐다. 처녀인 마리암(25) 이모의 품에 안겨 쉴새 없이 눈물만 흘린다.
고대안암병원 이윤영(가정의학과) 전임의는 “당장 피부이식이 필요한 상황이라 가능하면 한국으로 데려가 제대로 수술을 해주고 싶다”고 했다. 자완은 알록달록 예쁜 스웨터를 선물 받았다. 의료진은 자완의 한국행을 도울 계획이다.
자완 같은 아이가 어디 한둘일까. 앗사르(2), 소피아(3ㆍ여), 무스낀(4)…. 오뚝한 코와 해맑은 눈동자의 아이들은 돌더미에 짓눌려 상처만 드러냈다. 한 움큼의 사탕으로 눈물을 가리고 있다. 지진은 어린 생명에게 너무나 가혹했다.
희망의 싹은 바위를 뚫고도 자라는 법. 피해가 극심했던 발라코트에 27일 보잘 것 없지만 지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병원이 문을 열었다.
한국일보와 고려대의료원이 함께 꾸린 ‘파키스탄 재해지역 의료봉사단(단장 김승주ㆍ고대안산병원 외과 교수)’의 야외병원엔 이날 오전부터 환자들이 줄을 이었다.
10평 남짓 규모지만 접수대와 진료실, 주사실, 조제실을 갖추었다. 비좁지만 사랑은 넘쳤다. 의사 2명과 간호사 5명, 약사 3명은 땀을 닦을 새도 없이 환자들을 만났다.
2차 감염과 정신적 후유증에 시달리는 사람들이었다. 부러진 다리가 곪은 중년 남자, 아이 둘을 잃고 시름에 잠긴 엄마…. 추위 때문인지 감기환자도 많았다.
오후 4시30분 환자 164명의 진료를 마치고 마무리를 하려고 했으나 고통의 행렬은 끝날 줄 몰랐다. 그냥 갈 순 없는 일. “한 사람만 더.” 짐을 풀고 다시 싸기를 서너 차례. 차창 밖으로 아이들이 손을 흔들었다.
의료봉사단은 중얼거렸다. “아, 내가 의사가 된 것은 나만의 뜻이 아니었다. 내가 왜 간호사가 됐는지 이제야 알겠구나.” 어느새 하늘엔 별이 총총거렸다.
발라코트(파키스탄)=글ㆍ사진 고찬유기자 jutda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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