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궁경부암은 부인 암 중 85% 이상을 차지하는 여성의 난적이다. 최근 위암, 유방암, 대장암의 기세에 밀리고 있지만 암 직전 단계인 자궁 상피내암과 합하면 여성암 1위나 마찬가지다.
자궁경부암의 주요 발병 연령대도 눈에 띄게 낮아지고 있다. 과거에는 40대 이후였으나 최근에는 20, 30대 젊은 층으로 확산되는 추세다. 전문의들은 젊은 여성 환자가 증가하는 이유를 인유두종 바이러스(HPV) 감염 때문으로 보고 있다. 성 접촉 연령이 낮아지고 자유로워지면서 HPV 바이러스의 감염 위험이 높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 자궁암 주범 HPV 바이러스
19세기 서양의 과학자들은 자궁암이 수녀에게는 거의 생기지 않는데 윤락 여성에게는 많은 이유가 성병 후유증이나 합병증 때문이라고 의심했다.
실마리는 1970년대 후반 독일 주르하우젠 박사가 자궁 안에 기생하는 HPV를 발견하면서 풀렸다. 그리고 후에 HPV에 감염된 여성은 그렇지 않은 여성보다 자궁암에 20∼100배 잘 걸린다는 사실이 밝혀졌고, 1994년에 마침내 국제암연구기구(IARC)가 이 바이러스가 암을 유발한다는 사실을 공표했다.
최근에는 콜롬비아 국립암센터 누비아 무노즈 박사팀이 22개국 여성을 대상으로 역학 조사를 벌인 결과, HPV가 자궁암의 주범이라는 사실을 확인했다. 우리나라 상황도 비슷하다. 국립보건원 발표 자료에 따르면 자궁경부암에 걸린 여성의 90% 이상이 HPV를 보유하고 있으며 유흥업소 여성의 50% 이상이 이 바이러스에 감염된 것으로 드러났다.
하지만 HPV에 감염됐더라도 극히 일부만 자궁경부암으로 진행되는 데다가 그 기간이 20여 년 이상 소요되기 때문에 일찍 발견만 하면 완치될 확률이 높으므로 너무 걱정할 필요는 없다.
최근에는 HPV 감염을 예방하는 방법도 연구되고 있다. 얼마 전 미국에서는 120여가지 HPV 중 자궁경부암을 일으키는 것으로 알려진 고위험군(16, 18형)과 저위험군(6, 11형)의 감염을 막는 예방백신을 개발하고 2년간 임상을 통해 접종 결과를 추적 관찰한 결과, 암을 일으킬 위험을 100% 막을 수 있는 것으로 확인했다.
이 신약은 미국 식품의약국(FDA) 승인을 눈앞에 두고 있어 조만간 백신접종만으로 자궁경부암을 예방하는 시대가 열릴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이 달부터 서울대병원, 국립암센터, 가톨릭대 의대 등에서 9~23세 여성을 대상으로 HPV 백신 임상에 들어갔다.
■ 출혈은 암 전조 증상일수도
자궁경부암 역시 다른 암과 마찬가지로 본격적으로 진행되기 전에 조기 발견하는 것이 좋다. 1기에 발견하면 5년 생존율이 100%, 1기 말에는 80~90%, 2기 초에는 70~80%, 2기 말에는 60~65%, 3기에는 35~45%, 4기에는 15%로 떨어진다.
그러나 문제는 역시 발병 초기에는 특별한 증상(症狀)이 없다는 것. 눈에 띄는 증상이라야 질 분비물이 많아지고 성 관계시 피가 나는 것이 고작. 자각 증상이 뚜렷해졌을 때는 암이 상당히 진행됐거나 전이된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신장이 부어 허리가 아프거나 골반 신경에 영향을 미쳐 골반통이 생기거나, 방광이나 장에 번지면 배뇨 곤란, 혈뇨, 변비 등이 나타나기도 한다.
HPV 자체를 치료하는 것은 어렵지만 HPV 감염으로 암 직전 단계인 자궁 상피내암이 발견되는 경우 조직을 도려내거나 얼리거나 태우는 등의 치료법으로 병의 진행을 막고 바이러스를 없앨 수는 있다.
1기와 2기 초까지는 수술과 함께 항암화학요법과 방사선치료를 병행하며 2기말 이후에는 항암화학요법과 방사선치료를 병행하는 것이 원칙이다. 수술할 경우 환자의 병기(病期), 나이, 몸 상태 등에 따라 단순 자궁적출술, 광범위 자궁적출술, 골반 제거술 가운데 선택하게 된다.
■ 성 경험 있다면 정기검진을
암을 예방하려면 정기적인 검진을 통해 HPV 감염여부를 사전에 파악하는 길밖에 없다. 30세 이상인 여성은 1, 2년마다 면봉이나 칫솔 모양의 특수 기구로 세포를 살짝 긁어내 현미경으로 검사하는 ‘세포진검사’를 받는 것이 좋다.
다만 이 검사법은 암이 있는데도 없는 것으로 나오는 ‘위 음성률’이 15~30%에 이르므로, 자궁경부에 초산을 투여한 뒤 사진을 통해 진단하는‘자궁경부 확대촬영검사’나, 자궁경부를 6~40배 확대ㆍ관찰하고 의심 부위를 떼내 조직검사를 같이 할 수 있는 ‘확대경 검사’ 등을 곁들여야 위 음성률을 낮출 수 있다.
성 경험이 있는 여성은 나이와 관계없이 정기적으로 자궁암 검진을 받아야 한다. 일부 선진국에서는 성 경험이 있는 10대까지 암 검진 권고대상에 포함하고 있다.
■ 도움말=서울대병원 산부인과 송용상 교수, 국립암센터 박상윤 자궁암센터?
권대익 기자 dkwo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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