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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김윤규 전 현대아산 부회장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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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김윤규 전 현대아산 부회장께

입력
2005.10.2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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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규 현대아산 부회장님!, 아니 이제는 전 부회장으로 불러야겠군요. 22일 베이징에서 인천공항에 도착한 김 부회장을 둘러싸고 기자들이 고 정주영 현대 명예회장과 고 정몽헌 현대아산 회장 이야기를 하자 눈시울이 붉어지는 모습을 TV로 지켜 봤습니다.

김 부회장은 "대북사업은 현대가 계속해야 한다. 현대와 떨어져 대북사업을 수행할 생각이 없다"면서 항간에 떠돌던 대북사업 독자추진, 현대와의 완전 결별설 등을 일단 진정시켰습니다.

정주영 명예회장은 생전에 김 부회장을 어떤 그룹 경영자보다 총애하고 힘을 실어줬습니다. 그는 외롭고 힘들 때마다 김 부회장의 유머와 조크를 들으며 위안을 받았다고 합니다. 김 부회장은 그런 명예회장을 친 아버지나 다름없이 모셨습니다. 그래서 가신(家臣)으로 불렸지요. 김 부회장은 얼굴에 트레이드 마크가 있죠?

한쪽 눈주변 근육이 떨리는 것 말입니다. 1989년 리비아 발전소 공사대금 협상차 트리폴리로 가는 도중 비행기 추락사고로 입은 후유증이죠. 당시 승객 70명이 죽는 참사 속에서도 김 부회장은 구사일생으로 살아남지 않았습니까?

출장지인 옛 소련에서 이 소식을 들은 정 명예회장은 즉각 김 부회장을 서울아산병원에 후송치료토록 조치하곤 자신도 일정을 당겨 귀국해 문병을 했지요. "아니, 너 이래도 돼? 윤규, 너 멀쩡하구나?". "그래 난 네가 사고 날 때 비행기에서 뛰어내릴 줄 알았어. 너 담력이 좋잖아." 정 명예회장은 껄껄 웃었습니다.

정몽헌 회장은 유서에서 "당신 너무 자주 윙크하는 버릇 고치세요"라고 말했죠. 죽음을 앞둔 순간에도 대북사업 동지인 김 부회장에게 조크를 던질 정도로 진한 애정을 드러냈습니다. 며칠 치료를 받으면 완치될 것을 두 회장을 보필하느라 차일피일 미루다 아직도 윙크하는 버릇을 고치지 못하고 있지 않습니까?

현대의 대북사업은 김 부회장의 퇴진 문제를 계기로 중대 고비를 맞고 있습니다. 북측은 김 부회장의 퇴진을 문제삼아 20일 현대의 대북사업을 전면 재검토하겠다고 억지를 부렸습니다. 그러다가 25일 돌연 금강산관광 협의를 재개하자고 제의하는 등 예측 불가능한 행태를 보이고 있습니다.

김 부회장은 현대의 대북사업은 지속돼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당신이 그토록 존경하고 따랐던 정 명예회장의 소떼 방북과 정 회장이 목숨을 바쳐 이룩한 소중한 사업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현대측이 김 부회장을 불명예스럽게 퇴진시킨 것은 인간으로서 감당키 어려운 시련으로 다가왔을 것입니다. 특히 북측과 긴밀한 협의가 필수적인 대북사업의 특성을 감안치 않고, 김 부회장을 '내친' 현대의 인사는 분명 매끄럽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김 부회장에게도 문제는 있습니다. 본인도 최근 "대북사업에서 오너처럼 행세한 것에 대해 책임을 지겠다"고 말씀하셨죠. 퇴진의 발단이 됐던 문제의 핵심을 뒤늦게나마 파악하신 것 같아 다행스럽더군요.

남편의 유지를 받들어 대북사업의 꽃을 활짝 피려는 현정은 회장이나 경영진들이 북한에 갈 때마다 김 부회장의 고압적인 오너행세에 불만이 켜켜이 쌓였다는 말을 자주 듣습니다.

김 부회장은 백의종군하는 자세로 임해야 합니다. 과거의 떳떳치 못한 행태들이 이미 드러난 이상 인사문제를 과거로 되돌릴 수는 없을 겁니다. 인사상의 아픔을 딛고 누구보다 앞장서 북측에 현대의 독점권을 깨서는 안된다고 설득하는 금도(襟度)를 보여야 합니다.

진정 고인이 된 두 회장의 이야기가 나올 때 ‘윙크’하며 눈시울이 붉어졌다면 말입니다. 그럴 때 현 회장의 마음도 누그러지고, 다시금 대북사업에서 일정역할을 맡을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마침 북측이 대화재개 의사를 보였습니다. 현 회장이나 김 부회장이 다시 마음을 열어 윈-윈할 수 있는 때가 빨리 오기를 기대합니다.

산업부 부장대우 이의춘 jungleelee@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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