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정치인들이 인용해 화제가 된 잡보장경(雜寶藏經)은 불교를 접해본 사람들은 한번쯤 들어봤겠지만 일반인에겐 생소한 경전이다. 그러나 인용되는 구절은 그다지 낯설지만은 않다.
‘유리하다고 교만하지 말고/ 불리하다고 비굴하지 말라./ (중략) 벙어리처럼 침묵하고/ 임금처럼 말하며/ 눈처럼 냉정하고/ 불처럼 뜨거워라./ 태산 같은 자부심을 갖고/ 누운 풀처럼 자기를 낮추어라.(중략)’ ‘걸림 없이 살 줄 알라’는 제목이 붙은 구절의 일부다.
■ 이 경전은 풍부한 비유와 사례로 부처의 인연법을 설파한다. 여러 경전들에서 인연과 관련된 내용을 뽑아 모은 것으로, 121가지의 인연얘기가 실려 있다. 선과 악의 인과가 엄밀하며 지금의 화복은 과거 인연에서 비롯된다는 것이 주제다. ‘걸림없이 살 줄 알라’는 원전에는 ‘生也 思也’로 돼있는데 한글로 옮기면서 이런 제목이 붙었다.
잡보장경 중 ‘용왕게연(龍王偈緣)’에 나온다. 열린우리당의 문희상 의장이 최근 자신의 홈페이지에 의원회관 사무실에 걸어놓은 이 구절을 소개했다. 문 의장은 수년 전 외국에 사는 지인의 집에서 이를 발견하곤 같은 것을 구해 액자로 걸어놓고 마음으로 읽는다고 했다.
■ 언론들은 문 의장이 어려운 정치환경을 헤쳐나가기 위한 마음다짐을 보여주는 것으로 해석하기도 했다. 대통령 비서실장 시절, 노무현 대통령이 국민들의 재신임을 묻겠다고 선언한 직후 청와대 직원들에게 신중한 처신을 당부하는 이 메일에 이 구절을 첨부했다고 한다. 추미애 전 민주당의원은 전체를 암송할 정도다.
지난해 대통령 탄핵소추안 가결 직후 홈페이지에 ‘우리의 기대가 실현되지 않아도/ 아직은 우리의 기도와 꿈이 이뤄지지 않아도/ 인생의 가장 큰 영광은/ 한번도 쓰러지지 않는 것이 아니라/ 쓰러질 때마다 일어나는 것이다’라는 구절을 올리기도 했다.
■ 잡보장경의 많은 내용 중에서 특히 이 구절이 사랑 받는 것은 여기에 담긴 삶의 지혜가 너무도 우리 가슴에 와 닿기 때문일 것이다. 평생 살아가면서 겪을 상황을 함축하면서 각 상황에 맞는 삶의 지혜를 제시해준다
. 곁에 두고 자신을 가다듬는 글로서 이보다 나은 것을 찾기 어렵다. 이 구절의 참뜻을 조금이라도 깨닫는다면 이렇게 국민을 혼란에 빠뜨리는 일은 없을 텐데. 2,500여년 전 성인의 말씀이 현대에 사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절실하게 다가온다는 사실이 놀라울 뿐이다.
방민준 논설위원실장 mjb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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