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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ekzine Free/ 여행 - 북한은 지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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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10.2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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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묘향산을 가보니

평양의 낡은 건물 외벽이 세월의 더께를 벗고 있다. 거기에 덧입혀지는 화사한 페인트는 흔히 보던 거리 미화의 차원이 아니다. 북한땅에, 본격 관광 시대를 맞는 조짐이 피부로 느껴진다.

22~25일까지 평양과 묘향산을 다녀왔다. 평양 시내 환경 개선 사업을 위해 한국관광공사가 북한 민족화해협의회를 통해 전달했던 페인트와 타일 등의 사용처를 확인한다는, 어찌

보면 딱딱한 이유였다. 그러나 그 여정에서도 변화의 물결은 감지됐다.

금강산에 이어 개성의 시범 관광이 이뤄졌고, 이르면 내년 봄께는 북한을 통한 백두산 관광도 시작된다. 평양과 묘향산 관광도 시기의 문제일 뿐, 일반인에게 문을 열 날이 멀지 않았다. 그 날에 앞서 다녀온 묘향산과 평양을 소개한다.

묘향산은 기묘한(妙) 향기(香)가 피어 나온다는 뜻에서 유래했다. 소나무와 측백나무가 유독 많은 터에 산을 진동하는 독특한 향이 그런 이름을 만들어 냈다. 가을이 깊어 가는 지난 주말 찾은 묘향산은 단풍과 상록수가 빚어내는 오묘한 색채의 향연, 그 자체였다.

묘향산은 상원동입구, 만폭동입구, 비로봉입구 등 3곳으로 등산로가 나 있다. 23일 등반에 나선 곳은 만폭동 코스. 향산호텔을 출발한 버스가 만폭동 등산로 입구로 가는 길은 산자락까지 도달한 단풍이 색채의 향연을 연출하고 있었다. 단풍을 머금은 옥 빛의 묘향천은 그대로 한 폭의 수채화.

냇가에 자란 갈대는 가을 햇살에 비껴 은빛으로 빛났다. 개천은 산천어, 칠색송어, 모래무치, 버들치 등 1급수에서 볼 수 있는 물고기 천지다. 주말을 맞아 평양에서 온 학생들이 천렵을 즐기느라 시간가는 줄 모른다. 체제니, 이념이니 하는 것들은 얼마나 덧없는가.

등산로 입구에 도착했다. 이날 등산을 안내할 여성 가이드가 인사를 건넨다. “안녕하십네까. 허봉순입네다. 나이는 스물넷입네다. 별명은 묘향산 다람쥐랍니다.” 가이드의 간단한 인사말에 이내 웃음이 터진다. 키는 작은 편이지만 예쁘장한 얼굴이 앳되어 보인다. 남남북녀라는 말은 빈말이 아니었다.

“묘향산의 최고봉은 비로봉으로 높이는 1,909m입네다. 만폭동 구간은 등산길에 수많은 폭포를 볼 수 있어 붙었답니다.” 휴대용 확성기를 든 가이드의 꾀꼬리 같은 설명에 이어 본격 산행에 나선다. 10분을 가니 서곡폭포가 나온다. 만폭동의 시작을 알리는 서곡(序曲)인 셈이다.

등산로는 온통 바위길이다. 수직으로 치솟은 바위를 따라 물이 흐르면 그대로 폭포가 된다. 도저히 오를 수 없을 것 같은데, 자세히 보니 바위를 쪼개어 길을 냈다.

보폭이 적당해 생각만큼 힘들지는 않다. 조금을 더 오르니 하무릉폭포다. 두 갈래로 흐르는 물줄기가 사랑을 속삭이는 청춘남녀를 연상케 한다고 해서 사랑폭포라고도 불린단다. 지금은 갈수기여서 수량이 크게 줄어든 탓에 폭포의 장관을 제대로 볼 수 없는 것이 아쉬울 뿐이다.

무릉폭포 입구에서 다시 직각으로 선 절벽바위를 만난다. 바위 주변을 물들이는 단풍의 향연에 숨이 막힌다. 잠시의 휴식을 즐기려는데 가이드가 성화다. 약간 가빠져 오는 숨을 고른 뒤, 바위를 오르는데 어디선가 구성진 민요조의 노랫가락이 흘러나온다. 노래의 주인공은 다름아닌 가이드. 힘든 산행 중에 노래까지 부를 여유라니, 다람쥐라는 별명이 전혀 어색하지 않다. 멋들어진 노래 한 곡조에 나그네도 힘이 불끈 솟아난다.

이제부터는 선녀들의 세상이다. 하늘의 선녀가 내려와 사람들을 피해 몸을 숨겼다는 은선폭포, 선녀들이 목욕을 즐긴 유선폭포, 선녀들이 바위에 비낀 무지개를 타고 하늘로 올라갔다는 비선폭포가 연달아 나온다.

은선폭포 앞의 너럭바위 만폭대에 섰다. ‘묘향산은 천하제일 명산’이라고 쓴 김일성 전 주석의 친필 글씨가 바위에 새겨져 있다. 뒤를 돌아 보니 저 멀리 탁기봉 중턱에 바위가 서 있다. 천주석(天柱石)이다. 단군이 이 돌을 과녁 삼아 활쏘기 연습을 했다는 전설이 전한다.

은선폭포에서 유선폭포로 가는 길에 놓인 구름다리가 아찔하다. 60m 벼랑 위에 아슬아슬하게 걸려있는 유선다리에 은하수를 가로지르는 오작교가 절로 연상된다.

비선폭포와 9층폭포를 지나 단군의 탄생 설화가 전하는 단군동굴까지는 2㎞남짓. 이왕 내친 걸음 더 오르고 싶지만 날이 어두워져 더 이상 산행을 진행할 수 없다. 하산하는 발걸음이 떼어지질 않는다. 묘향산을 찾은 어느 시인이 당시 심정을 표현한 시구가 나그네의 마음을 고스란히 대신할 뿐.

“만폭동 오름길은 십리도 못되는데/ 한낮이 기울도록 못 다 올랐네/ 오르자니 무릉폭포 걸음 붙들고/ 머물자니 유선폭포 어서 오라 부르네/ 저 해를 멈춰세워 백날 보면 다볼가/ 하루해가 짧은줄 예와서 알겠구나.”(조선국제려행사가 펴낸 관광 책자 ‘묘향산’ 중에서)

묘향산=글ㆍ사진 한창만기자 cmhan@hk.co.kr

■ 묘향산 명소/ 보현사

묘향산 답사 마지막 일정은 보현사에서 갈무리한다. 1042년 고려 정종 8년에 창건된 보현사는 부처의 도덕을 관장하는 보현보살의 이름에서 따왔다.

임진왜란 승병장으로 이름을 떨친 서산대사와 사명대사를 배출한 유서 깊은 절이다. 24채의 건물이 있었는데, 6ㆍ25전쟁 당시 미군의 폭격으로 대웅전, 만세루 등 건물 10여동이 파괴됐다.

대웅전과 만세루 사이에 자리한 8각의 13층탑은 폭격 당시 진동으로 오른쪽으로 기울어 피사의 사탑을 연상케 한다. 8각 지붕 추녀에 달려있는 104개의 풍경이 바람이 흔들리며 내는 소리가 은은하다. 만세루 앞에 있는 4각 9층탑은 고려시대의 탑 양식에만 나타나는 연꽃 모양의 장식이 아름답다.

보현사는 호국 불교의 산실이기도 하다. 절 옆 한 편에는 임진왜란 당시 의병장을 지낸 서산대사, 사명대사, 처영 등을 제사 지내기 위한 사당 수충사가 있고, 지금도 봄, 가을마다 제사가 진행된다.

보현사는 합천 해인사에 보관중인 팔만대장경판으로 찍어낸 유일한 인쇄본(6,793권)이 전해지는 곳이기도 하다. 장경각에는 당시 만들어진 대장경 판목중 일부(1,529권)가 함께 보관되고 있다.

■ 평양에 가보니

개성에서도, 금강산에서도 그랬다. 북한의 거리는 온통 잿빛이었다. 그래서였을까. 평양도 그보다 크게 나을 게 없다고 생각했다. 물론 어줍지 않은 선입견이 깨지는 데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는 않았지만.

흔히들 평양을 공원 속의 도시라고 부른다. 그만큼 녹지 공간이 많다는 뜻일 터. 평양 순안공항을 출발한 버스가 공항을 벗어나자 쭉쭉 뻗은 포플러 나무 가로수가 남쪽 이방인을 맞는다. 마치 숲속에 길이 나 있는 느낌이다.

평양 시내에 가까워 오니 드넓은 평양 평야에는 가을걷이가 한창이다. 이미 벼를 베어낸 자리에 심은 보리의 푸른 빛이 눈의 피로를 가시게 한다. 이삭 줍기를 하다 말고 볏단에 기대어 담배 한 모금에 취한 농부의 모습은 남측의 정경과 다른 곳을 찾기 힘들다.

금릉2다리와 금릉동굴(터널)을 지나 본격 평양 시내에 진입했다. 금수산 기념 궁전 앞 대로 옆에 설치된 궤도 전차가 부지런히 관광객을 실어 나른다. 김일성 종합대, 4ㆍ25 문화 회관, 우의탑 등을 지나 개선문에 들어선다.

겉보기에는 평지에 지어진 듯 하지만 이 곳은 사릴 모란봉 자락이다. 높이 60m로 프랑스 파리의 개선문보다 10m나 높다고. 개선문 광장에서 멀지 않은 을밀대에는 상추곡(賞秋曲)을 즐기려는 평양 시민들로 가득하다.

평양 학생 거리는 제법 번화가인 모양이다. 창전식료품, 창전옷상점, 종로약복점 등의 이름을 단 잡화 상점이 거리에 즐비하다. 은행나무 가로수는 노랗게 물들며 가을을 재촉하고, 대동강과 보통강 주위에 능수 버들은 가는 가을이 아쉬운 듯 축 늘어졌다. 평양의과대학 앞 윤이상 음악관 담벼락을 가득 메운 담쟁이 넝쿨은 마지막 붉음을 불사르고 낙엽으로 변신할 채비를 서두른다.

본격적인 관광에 나선다. 조선중앙역사박물관을 들렀다. 원시 시대에서 근대에 이르는 북한 지역 유물 10만여점이 전시돼 있다. 부산 동삼동 패총과 함께 국내 대표적인 구석기 유적인 평양시 상원군 검은 모루 동굴에서 출토된 물소와 사슴의 화석뼈가 진열돼 있다. 교과서에서 보았던 검은모루가 바로 여기다!

잃어버린 역사의 반쪽을 찾은 느낌이다. 고구려 세번째 도읍지인 안학궁과 덕흥리 무덤벽화의 내부를 원형 그대로 재현한 전시관도 인상적이다. 한편 신라, 백제의 유적을 찾는 것도 쉽지 않은 편이다.

만경대 학생소년궁전은 남한으로 치자면 어린이 회관에 해당하는 곳. 7~17세 청소년의 예능 교육을 담당하고 있다. 가야금, 발레, 수예 등 다양한 예능 교육을 받을 수 있는 데 수강료가 모두 무료이다.

2,000석 규모의 극장에서는 기량을 닦은 청소년들의 공연이 수시로 이뤄진다. 평양교예극장에서는 평양의 대표적인 서커스공연팀으로, 모란봉교예단과 쌍벽을 이루는 평양교예단의 공연을 관람할 수 있다. 인간의 한계를 뛰어 넘는 묘기들이 펼쳐진다.

고구려 시조인 동명왕의 묘로 알려진 동명왕릉은 427년 장수왕이 길림성에서 평양으로 수도를 천도할 당시 옮겨왔다. 동명왕릉과 이 주변에 산재하는 16기의 왕릉은 지난 해 세계 문화 유산으로 등재됐다. 일제 때 도굴로 심하게 훼손됐으나 1993년 다시 복원했다. 인근에 조성된 소나무는 제주도에서 가져온 것들이다.

입구에는 왕릉 조성 당시 세운 정릉사터가 있다. 북한이 고구려 벽화 등의 유물을 근거로 전통 양식대로 복원했다. 단층도 신라, 백제는 물론 고려의 절에서 보는 것과 달라 이채롭다. 대웅전(大雄殿)을 옛 이름인 보광전(普光殿)으로 표기하는 것도 색다르다.

평양=글ㆍ사진 한창만기자 cmhan@hk.co.kr

■ 여행수첩/ 평양, 묘향산

부정기적이기는 하지만 인천공항에서 평양 순안공항까지 직항로가 개설돼 있다.

1시간 가량 걸린다. 순안공항은 국제선 공항. 순안공항에서 평양 시내까지는 22㎞. 평양의 숙소로는 고려호텔이 유명하지만 시설이 낡은 편. 유럽인이 주로 이용하고 있다. 남한이나 일본, 중국 측 관광객은 2002년 건설된 양각도호텔에서 대개 묵는다.

양각도는 대동강내에 위치한 조그만 섬으로 서울의 여의도에 해당하는 곳. 47층에 있는 스카이라운지는 회전식이어서 한 자리에 앉아 있으면 평양 시내 전경을 감상할 수 있다. 식당으로는 평양냉면으로 이름난 옥류관이 대표적이지만, 최근 개고기 요리를 전문으로 하는 평양 단고기집도 인기다.

평양에서 묘향산까지는 160㎞. 평양 – 순안 – 숙천 – 안주 - 개천을 지나 묘향산과 연결되는 관광 도로를 주로 이용한다. 2시간 가량 소요된다.

평성과 순천을 지나는 코스는 150㎞가량으로, 도로 사정이 좋지 않아 잘 이용하지 않는다. 평양에서 묘향산까지 잇는 철도와 관광 전용 열차도 운행한다.

묘향산 관광객은 대부분 향산호텔에 머무른다. 1985년 지어진 이 호텔은 15층 규모에 객실이 228개이다. 피라미드 모형으로 생긴 호텔 꼭대기에는 회전 식당이 있어 묘향산의 전경을 돌아가면서 볼 수 있다.

사우나, 안마, 노래방, 춤방 등 부대 시설도 많은 편. 노래방에는 ‘아침이슬’, ‘감격 시대’ 등 남한 노래도 30여 곡 저장돼 있다. 춤방은 나이트 클럽이 아니라, 북한의 유행가에 맞춰 집단 군무를 추는 무도회장에 가깝다.

■ 길에서 띄우는 편지/ 북한

평양과 묘향산을 가면 북한의 주체 사상을 홍보하는 건축물이나 전시관을 방문하는 데 대부분 일정이 쓰여집니다. 평양에서 본 주체사상탑, 개선문, 인민대학습관, 소년학생궁전, 만경대고향집 등은 국가 보안법을 차치하고서라도 언필칭 관광지라며 소개하기에 망설여지는 것이 사실입니다. 반면 묘향산 탐밀봉 기슭에 자리잡은 국제친선전람관만은 예외였습니다.

1978년 문을 연 이 곳은 김일성 전 주석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세계 178개국의 국가 수반이나 저명 인사로부터 받은 21만여점의 선물을 전시하는 곳입니다. 89년 건축된 별관에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받은 선물을 공개하고 있습니다. 이 전람관 역시 북한 체제의 우수성을 알리기 위한 선전용임은 분명합니다.

우선 건물 외관부터 관람객을 압도합니다. 청기와로 만든 전통 합각 지붕에 목란꽃, 진달래꽃으로 단청한 기둥머리와 서까래는 목조 건물 같지만 실제로는 모두 돌로 만들어졌습니다. 무게가 4톤을 넘는 출입구는 한 손으로 밀어도 열릴 정도니 나즈막한 탄성이 나옵니다.

입구에 들어서면 100개가 넘는 전시실과 마주칩니다. 하지만 이 곳에서 정작 놀란 것은 전람관의 전시품의 내용이 상상을 초월한다는 것입니다. 장쩌민(姜澤民) 중국 전주석의 도자기 꽃병, 쿠바의 피델 카스트로가 보낸 악어 가죽 가방, 시리아 대통령의 장검 등은 당대 그 나라 최고의 장인들이 직접 제작한 최상품들입니다.

1962년 레슬링 선수 역도산이 보낸 벤츠 승용차, 미국의 농구 선수 마이클 조던의 친필 사인이 새겨진 농구공, 펠레가 선물한 축구공도 있습니다.

정주영 명예회장이 98년 소 떼를 몰고 방북할 당시 선물한 금송아지, 2000년 6월 15일 김대중 전 대통령이 남북정상회담 차 방문했을 때 가지고 간 평면TV 등 역사적인 가치를 지닌 전시품도 고스란히 있습니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남한의 역대 대통령들도 방한하는 많은 인사들로부터 받은 선물도 적지 않을 텐데 모두 어디에 보관돼 있을까. 이 선물들을 한 데 모으기만 해도 전 세계의 소중한 유물을 아우르는 훌륭한 박물관 하나를 만들 수 있을 텐데’ 하고 말입니다.

한창만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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