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도봉구 창동 창일초등학교 4학년 배주형(11)군과 경남 통영에 사는 황정두(68)씨가 서로를 알게 된 지는 두 달 남짓하다.
하지만 이들은 누구보다 절친한 ‘조손(祖孫ㆍ할아버지-손자) 커플’이다. 이들이 나누는 편짓글에는 시골에 사는 할아버지와 서울의 손자가 멀리 떨어져 서로 그리워하며 나누는 애틋한 정이 물씬 묻어난다.
“…다음에 만나면 주형이를 안아주고 싶구나. 언제 기회가 있으면 이순신 장군님의 유적지를 관광시켜 줄게. 통영은 한국의 미항(美港)이라 불릴 정도로 너무나 좋은 관광지란다. - 9월5일 아침 황정두 할아버지가”
“…벌써 가을이에요. 저도 이순신 장군에 대해 관심이 많답니다. 빨리 할아버지 농장에 가서 농사를 지어보고 싶어요. – 9월8일 손자 배주형 올림”
지난 8월 우연히 ‘청소년ㆍ어르신 사랑의 조손 결연 운동’을 접한 배 군의 아버지 배영조씨는 부부가 맞벌이를 해 보살펴 줄 어른이 없는 외아들을 떠올리고 선뜻 참여신청을 했다.
처음에는 할아버지 할머니를 모르고 자란 아들이 쉽게 받아들일까 걱정도 했지만, 지금은 편지를 쓰면서 즐거워하는 아들을 볼 때마다 흐뭇하기만 하다. 7~8차례 편지를 주고받은 이들은 얼마 전 실제로 만나기도 했다.
사단법인 ‘범국민예의생활실천운동본부’가 벌이는 조손 결연 사업은 편지 전화 이메일 등 다양한 의사소통 방식을 통해, 우리 사회의 핵가족화와 가족 해체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사회 운동이다.
지난 6월 말부터 시작돼 지금까지 300쌍의 조ㆍ손 커플이 탄생했다. 양우석(40) 청소년ㆍ어르신 사랑의 결연본부 총괄처장은 “예상했던 것보다 청소년과 어르신들의 참여 의지가 높아 서로 의사소통에 별 어려움이 없다”고 말했다.
“우리 사회에서 청소년과 노인들은 자칫 잘못하면 소외계층으로 전락하기 쉽습니다. 이 운동을 통해 경륜이 있는 노인들에게 청소년 문제 해결이라는 사회적 역할을 맡김으로써 청소년 일탈과 노인 소외라는 두 가지 사회 문제를 동시에 해결할 수 있는 효과가 있습니다.”
대상자는 시도교육청의 추천이나 부모의 신청을 받은 전국의 9~19세 사이의 청소년과 유림의 추천, 혹은 전통예절에 대한 일종의 자격증인 ‘실천예절지도사’ 교육을 이수한 분들(만 65세 이상) 중에 선정했다.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비율은 6대4 정도로 청소년 본인의 희망에 따라 정해진다. 결연 기준도 엄격해 원거리 배정 원칙을 지키고 있다. 자칫 어린 청소년들이 무리한 금전적 요구를 할 경우와 같은 불미스러운 일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서다.
“우리 사회에 극단적 이기주의는 세대 간 예절 교육의 단절에서 비롯된 측면이 큽니다. ‘동방예의지국’의 면모를 되찾기 위해서 사회 차원의 교육은 필수적인 것이지요. 이를 위해 사업의 성과를 바탕으로 앞으로 다년도 사업으로 확대해 나갈 계획입니다.”
결연 본부는 연말에 300쌍의 조ㆍ손 커플과 가족이 한자리에 모이는 만남의 자리를 마련할 계획이다.
김이삭 기자 hir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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