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장이냐 복지냐.’
27일부터 이틀간 영국 런던의 햄스턴 코트에서 열린 유럽연합(EU) 정상회의의 화두다. 침체된 유럽 경제를 살리기 위해 EU 의장국인 영국의 토니 블레어 총리는 이른바 ‘앵글로색슨’형 경제정책 모델을 도입해 성장과 경쟁력을 확보하자는 반면, 프랑스를 비롯한 대륙 국가들은 사회안전망을 중시하는 사회민주주의 모델을 고수했다.
의견차이는 EU의 2007~2013년 예산을 둘러싼 영국과 프랑스의 이해관계에서 나왔다. 영국은 이 기간 연구개발(R&D) 투자를 늘려 기업의 경쟁력을 강화하고, 갈수록 미국 대학에 밀리는 유럽 대학을 키우자는 입장이다.
반면 프랑스는 한정된 예산에서 R&D 투자확대로 인한 농업 보조금의 삭감을 우려하고 있다. EU 최대의 농업국인 프랑스는 EU 예산의 40%를 차지하는 농업 보조금이 줄 경우 미국 중국 등의 값싼 농산물로 인해 막대한 타격이 예상된다.
이 같은 양측의 입장차는 표면적으로 미국식 세계화에 대한 입장 차이로 나타나고 있다. 영국은 EU가 과도한 복지지출로 성장에 쓸 돈이 없다고 진단한다. 영국 무역산업부가 2004~2005년 세계 기업들의 R&D 투자액수를 비교한 결과 EU 기업은 평균 2% 증가한 반면, 미국과 아시아는 평균 7% 늘어났다. 더구나 EU 기업의 R&D 투자 증가율은 최근 4년간 점점 하향곡선을 그리고 있다.
프랑스 독일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사회보장비 지출은 30%를 넘어섰다. 반면 ‘앵글로색슨 모델’을 도입한 아일랜드는 16% 수준이다. 영국 아일랜드 스페인 등 EU 내‘앵글로색슨 모델’을 도입한 국가들의 경제 지표도 그렇지 않은 국가들에 비해 좋은 편이라는 점도 영국의 입지를 넓히고 있다.
프랑스와 찰떡 공조를 과시하던 독일도 최근 정권 교체로 미국 영국과의 협력으로 무게가 기울고 있다. 동유럽도 영국에 호의적이다. 동유럽 노동자는 지난해 17만5,000명이 영국에 8만5,000명이 아일랜드에서 취업했지만, 자국민을 우선시하는 프랑스에서는 겨우 1,600명만 취업했다.
두 모델 중에 어느 것이 바람직한지는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분분하다. 비용절감과 효율성을 중시하는 ‘앵글로색슨 모델’은 새 일자리 창출에서 유리하다. 그러나 스페인의 경우 일자리는 늘었으나 질은 크게 떨어진 사례가 최근 파이낸셜타임스 보도로 밝혀졌다. 대륙형 사회민주주의 모델은 기존 노동자는 고용보장을 받지만 신규 노동자의 취업이 어려워 실업률이 높아진다.
프랑스는 “영국이 경제는 살렸지만 노동자의 삶의 질은 떨어트린 대처 전 총리 정책을 EU에 적용시키려 한다”고 공격하고 있다. 이에 대해 블레어 총리는 EU 예산 중 73억 유로를 투입해 ‘충격 흡수 기금’을 만들어 구조조정 희생자들을 돕자는 ‘하이브리드’ 방안을 제시했다. 하지만 이는 프랑스보다 더 강한 사회주의를 추구하는 네덜란드와 스웨덴 등의 반발을 불러 일으키고 있다.
홍석우기자 museho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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