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대통령이 27일 여당의 10ㆍ26 재선거 참패에 대해 “대통령의 국정 운영에 대한 평가로 받아들인다”고 한 것은 국정 운영 실패를 어느 정도 인정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의미가 여기에만 국한되지는 않는다는 게 중론이다. 다목적 포석이라는 것이다.
우선 열린우리당이 지도부 책임론을 둘러싸고 내홍에 휩싸이는 것을 막기 위한 고육책이라는 분석이다. 부동산 대책 법안 등 이번 정기국회에 처리해야 할 중요한 현안이 많기 때문에 여당이 동요 없이 정기국회에 전념해야 한다는 뜻에서 대통령 책임론을 들고 나왔다는 얘기다. 다시 말해 “나에게 책임이 있으니 당에선 책임 공방을 하지 말라”는 메시지인 셈이다. 이는 청와대측 공식 설명이기도 하다.
또 여당 책임론 공방의 와중에 의원들 사이에 ‘대통령 책임론’이 제기될 것이 뻔하므로 대통령이 먼저 ‘내 탓이오’라고 말하는 게 파문을 조기에 수습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판단했을 수도 있다.
정치적 의도와 별개로, 대통령의 발언에 진정성이 부족하다는 지적도 적지 않다. 국정 실패에 대한 진짜 사과 보다는 예상되는 당 분란 봉합에 목적이 있는 게 아니냐는 것이다. 청와대측이 “이번 패배로 인해 인적 쇄신이나 정책기조 변경 등이 당장 검토되는 것은 없다”고 밝힌 것도 대통령 책임론의 진정성에 의구심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하지만 노 대통령이 29일 당ㆍ정ㆍ청 지도부와의 만찬 등 각계 인사와의 면담을 거친 뒤 나름의 국정 쇄신책을 내놓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청와대 관계자는 “정책 기조의 변경은 없더라도, 국정운영 방식의 일부 변화는 생각할 수 있다”며 “정책 추진 과정에서 가급적 갈등을 줄이고 대화와 타협의 문화를 중시하는 방향으로 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노 대통령은 또 연말이나 내년 초에 당ㆍ정ㆍ청 주요 진용을 개편하는 방안을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연말 연초에 정동영 통일장관, 김근태 복지장관 등이 당에 복귀할 경우 노 대통령이 여러 정파와 각계의 인사를 고루 기용하는 ‘거국 내각’을 구성하는 방안도 상정할 수 있다.
노 대통령이 대연정론을 제기했던 것처럼 여야의 대결구도를 근본적으로 바꿀 수 있는 정치구조 개혁안을 내놓을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하지만 노 대통령이 정치공학적 접근을 하기 보다는 국민통합과 경제 살리기를 위한 국정 쇄신 방안을 내놓아야 한다는 게 여론의 큰 흐름이다. 결국 이날 노 대통령 발언의 진정성 여부는 어떤 후속 대책을 내놓느냐에 달려 있다고 볼 수 있다
김광덕 기자 kd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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