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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기, 전쟁 그리고 인간] (31) 대화력전(對火力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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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기, 전쟁 그리고 인간] (31) 대화력전(對火力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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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10.2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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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집트에 갔다. 군수생산부 장관의 집무실. 7,000년 전부터 병기를 만들었다는 자랑 섞인 글과 함께 병거(兵車)의 그림이 벽에 걸려 있었다.

우리 한국에서는 겨우 4338년 전부터 병기를 생산했다고 말을 건네자 모두 크게 웃었다. 무엇을 얘기하려는지 서로 금방 알 수 있었기 때문이었으리라. 7,000년 세계 역사에 전쟁이 없었던 날은 채 100일도 안 된다.

권투선수와 전쟁기획

2004년 12월 31일 발표된 국방백서 2004. 독자적인 ‘전쟁기획 및 작전수행’이란 말이 눈을 끈다. 전쟁기획이라니, 이 땅의 역사와 현실을 살펴보면 선뜻 이해하기 어려운 말이다.

그것은 어떻게 전쟁을 할 것인지를 계획한다는 뜻이다. 적이 누구인지 설정하고, 아군과의 전력을 비교하고, 전쟁의 방법을 구상하는 총괄적 계획이다.우리 군에서는 합참이 담당한다.

전쟁기획이야말로 가장 역점을 두고 강화해야 할 능력이라고 군 고위인사들은 입을 모은다. 한번도 우리 독자적으로 전쟁을 준비하고 우리 스스로 전쟁을 시작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

거의 적이 침략해 왔을 때 대응전쟁을 치른 경험뿐이다. 아마도 6ㆍ25 남침 전쟁을 기획하고 수행한 북한이 우리보다는 풍부한 경험과 지식, 그리고 자료를 축적했을 것이다.

전쟁기획. 그것은 적에 대해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어야 가능하다. 정찰 수색 정보획득 그리고 적을 감시하고 있어야 한다. 적을 패퇴 시킬 수 있는 전력이 확보돼 있어야 한다.

챔피언 전을 치르기 위해 링에 오르는 권투선수를 상상하자.상대선수에 대한 정보를 미리 입수하여 철저히 연구 분석하고 어떻게 싸울 것인가 작전을 세운 후 그에 맞추어 훈련을 한다.

링에 오르면 오직 이기는 것 밖에 다른 길이 없다. 귀와 눈과 모든 감각 기관을 총 동원하여 상대의 움직임을 관찰하고, 쉴 새 없이 몸을 움직여 상대에게 공격의 틈을 주지 않고 빙빙 돈다.

그러다가 전광석화처럼 상대를 강타해서 바닥에 눕힌다. 이 모든 과정이 전쟁기획과 수행에 해당한다. 아무 생각 없이 코치가 시키는 대로만 싸우는 권투선수가 챔피언 벨트를 차지한 것을 본적이 없다.

대화력전과 전쟁기획 북한의 군사력은 세계 제 5위의 규모이다. 3,700대의 탱크, 3,500대의 장갑차량, 4,000문의 자주포 그리고 거의 800대에 이르는 항공기를 보유하고 있다.

2004년 국방백서에 따르면 4개 군단, 그 후방에 1개 전차군단, 2개 기계화군단 및 1개의 포병군단 등 평양-원산선 이남지역에 지상군 전력의 70% 가량을 배치하고 있다. 남한 인구의 40% 이상이 수도권에 밀집되어 있다.

북한의 170mm 자주포 및 240mm 방사포의 사정거리는 대략 50 ~ 60km이다. 우리는 북한의 직접화력 위협 아래 놓여있다. 이 같은 북한 포병화력의 위협에 대한 방어 전략이 대화력전이다.

2001년 3월, 당시 한미연합사 사령관 겸 주한미군 사령관이던 슈와르츠 대장은 미 의회에서 “개전 초기에 북한군은 전방으로 이동하지 않고도 현 진지에서 시간당 50만발 수준으로 서울과 한미연합사 방어진지 등을 몇 시간 동안 공격할 수 있다”고 증언했다.

대부분 산의 후사면에 위치한 갱도(터널)안에 배치되어 있어 갱도포병으로 불리는 북한 야전포병은 갱도를 들락거리며 남쪽을 향해 공격을 퍼부을 것이다.

한미 연합군이 막강한 공군력과 227mm 다연장로켓(MLRS)으로 북한의 포 진지를 선제 공격하는 방법이 있다. 그래도 수도권을 겨누고 있는 300문 내지 500문의 북한군 포병전력 중 최소한 30% 이상은 살아남을 것이다.

그리고 1분에 3,000발씩 포탄을 수도권에 발사할 것이다. 전쟁에서 탱크는 무섭다. 탱크를 앞세우고 쳐 내려오는 보병도 무섭다.

그러나 탱크는 후방의 포병 화력에 의해 앞길에 있는 방어 세력이 모두 무력화된 이후에나 움직인다. 따라서 개전 초기의 최대 위협은 북한군 탱크와 보병부대의 길을 열어주는 포병화력이다.

어떻게 그 북한군 포병화력을 무력화 시킬 것인가? 갱도 안에 있는 포병전력은 미국이 개발한 동굴파괴탄, 지하관통파괴탄 등으로 공격하고, 사격을 위해 갱도 밖으로 나온 포 부대는 공군이 투하하는 통합직격탄(JDAM)으로 파괴하는 방법이 있다.

또 북한군이 포를 발사하면 미군과 한국군이 보유한 AN/TPQ-36, AN/TPQ-37 이라는 대 포병 레이더로 북한 포의 위치를 확인하고 우리 포병의 대응사격 유도도 가능하다.

대 포병레이더의 성능개량이 시급한 것으로 파악된다. 미국이 개발중인 AN/TPQ-46과 유럽에서 실전 배치한 COBRA(Counter Battery Radar)급 성능이 필요한 시점이 됐다.

한미 연합사의 작전계획은 대화력전의 주체를 공군으로 규정하고 있다. 기지에서 이륙한 공군기가 목표지점에 이르러 북한군의 갱도포병을 무력화 시킬 만한 위력의 무기를 발사한다는 내용이다.

한미 연합군 특히 한국군 포병의 역할이 상대적으로 제한되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한미 연합군의 포병이 보유한 155mm 자주포, 다련장로켓(MLRS)은 주력이 아니고 보조 전력으로 기능한다.

또한 미국 자체에서도 합참과 각 군 특히 육군과 해병대 등이 각각 다른 각도에서 수용하고 있는 화력지원협조선( FSCLㆍ Fire Support Coordinate Line)이 우리나라에서는 전장의 책임 구역을 분리해 놓는 것처럼 잘못 이해되고 있다

한국군은 미국이 주도하여 수립한 대화력전 작전개념을 앞으로도 그대로 수용할 것인가? 이전과 달리 이제 한국군은 미군이 보유한 것보다 월등한 155mm 자주포 K-9을 개발, 보유했다.

전세계적으로 최고로 대접받던 독일의 PZH-2000과 쌍벽을 이루는 뛰어난 무기체계이다. 이 K-9의 성능을 제대로 발휘하여 북한의 갱도 포병에 대응할 수 있는 수단이 최근 등장했다.

20여억달러를 투자하고도 미국에서는 실패한 신관감응식 정밀지능탄(SFMㆍ Sensor Fuzed Munition)을 유럽의 국가들이 개발에 성공했다. 수년 전부터 실전에 배치했고 미국도 이제는 이를 채택하기 위해 비교평가 시험을 하고 있다.

북한의 갱도포병에 대응할 수 있는 수단(포와 정밀지능탄약)을 동시에 확보 가능한 시기가 됐다. 원래 이 탄약은 앞으로 개발될 차세대 전차까지 파괴할 수 있는 상부타격 지능탄이다.

어떤 방법으로도 기만하거나 회피할 수 없는 사격 후 망각(Fire and Forget)형이다. 내장된 다중 센서를 이용하여 탄착점 부근 상공 200m 고도에서 낙하하며 3만5,000 평방미터 이내에 있는 지상 장갑표적(전차 장갑차 자주포 등)을 스스로 탐지하여 타격한다. 목표지점에 표적이 없을 경우에는 이중 자폭기능이 작동돼 한발의 불발탄도 전장에 남기지 않는다.

우리의 많은 포병 장교들은 신관감응식 지능탄을 사용한다면 기후에 상관 없이 북한의 갱도포병을 직접 대응할 수 있다고 믿고 있다.

지금처럼 미 공군의 전력에 크게 의존하는 것보다 한국군이 대화력전의 중추적 역할을 담당할 수 있다는 생각이다. 이론상 포병탄약의 탄두나 탄착 분포상 효과를 감쇄하지 않고 달성할 수 있는 최대 사거리는 52 구경장(口經長ㆍ Caliber) 155mm의 겨우 28km이다. 인위적으로 사정거리를 늘리면 탄두의 효과가 줄어들거나 정확도가 떨어지고 아직은 연장된 사정거리까지 정확하게 탄두를 유도하는 기술이 개발되지 않았다.

북한군 갱도포병 표적 약 60 ~ 70%가 우리 포병의 사정거리 안에 위치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런 의미에서 화력지원협조선(FSCL)이 전면 재검토하고 아울러 공군에 의존하던 대화력전에 지상군 특히 포병이 중요한 전력으로 참여하면 공군은 좀더 전략적 목표물의 공격에 할당할 수 있는 길이 열린다.

우리가 알고 있는 것만큼 북한도 우리의 대화력전 취약점을 알고 있다. 우리 포병이 새로운 대화력전 전력을 확보한다면 확실한 전쟁 억제력으로 작용할 것이다.

우리 생애에 단 하루만이라도 전쟁 없는 날을 추가하여 전쟁 없는 100일을 채울 수 있을 것인가

윤석철객원기자 ysc@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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