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정신(Zeitgeist)’은 독일의 철학자이자 비평가인 요한 고트프리트 폰 헤르더가 1769년 처음으로 쓴 말이다. 20대 초반 무렵 헤르더는 프랑스 낭트로 바다여행을 하면서 자신이 안전한 육지를 떠나 미지의 미래로 항해하는 뿌리 뽑힌 존재라는 자기운명을 깊이 깨달았다고 한다.
미래가 어떤지를 과거로부터 얻은 통찰을 통해 밝혀내는 것이 자신의 소명이라고 여긴 그는 청년 시절 스트라스부르크에서 역시 청년이었던 괴테와의 만남을 통해 영향력을 키우면서 독일 낭만주의 시대를 연 질풍노도 운동의 선구자가 됐다.
■시대정신은 ‘한 시대의 문화적 소산에 공통되는 인간의 정신적 태도나 양식, 또는 이념’으로 정의된다. 가령 르네상스의 시대정신은 수 세기 동안 교회의 절대적인 권위에 눌린 암흑시대의 과거를 이질(異質)의 시대로 여기고, 그 권위로부터 해방되려고 했던 휴머니스트들의 새로운 인식이라고 할 수 있다.
이탈리아의 철학자 베네디토 크로체가 “역사를 생각하는 것은 역사의 시대를 구분하는 것”이라고 했지만 그 시대의 무엇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 것인가는 역사가의 사관이나 가치관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단정적으로 이 것이 그 시대의 시대정신이라고는 말할 수 없는 것이어서, 역사와 마찬가지로 끊임 없이 다시 써야 한다는 것이다.(동아 세계대백과사전)
■최근 들어 시대정신이라는 말을 부쩍 많이 듣게 됐다. 강정구 교수 논란 와중에 청와대 등 여권으로부터 쏟아지고 있다. ‘선출된 권력의 검찰 통제’ ‘법 해석의 대통령 우위’ 등의 말들과 함께, 사퇴한 검찰총장을 비난하면서 “검찰도 시대정신에 따를 필요가 있다”고 한 청와대 민정 수석을 상기해 봤다.
그 시대정신에 따른 것인지 법무장관은 사상 첫 지휘권 행사로 검찰총장의 항의사퇴를 빚고도 “검찰 독립과는 아무 상관이 없는 일”이라고 잡아떼고, 국회에 나온 국무총리는 “살면서 별 꼴 다 본다” “왜 의원이 총리에게 훈계하려 하는가”라고 의원들의 질문에 극도로 오만하다.
■정권측의 이런 시대정신을 국민은 어떻게 여길까. 단적으로 며칠 전 한 신문의 여론조사는 천 장관의 지휘권 발동에 ‘공감하지 않는다’는 응답이 ‘공감한다’는 응답보다 압도적으로 나타난 결과를 전하고 있다.
자기들과 다르면 국민여론도 ‘일시적인 감정’쯤으로 여기면서 정권이 스스로 선창하는 시대정신이 무엇인지 헤아릴 길이 없다. 엉키고 꼬여 뒤죽박죽인 나라를 놓고 “나라는 반석 위에 올라 있다”고까지 공언하니 ‘고개가 절레절레’다.
조재용 논설위원 jaech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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