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덟 살 무렵에는 밥 잘 먹고 숙제 잘하고 일기만 잘 쓰면 됐다. 중, 고등학교 시절에는 공부만 잘 하면 칭찬 받았다.
수험생들은 “공부씩이나 잘 한다는 게 어디 쉬운 일이냐”며 발끈하겠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성적표는 이 세상에서 가장 정직한 것이었다. 얼굴 못 생겼다고 뚱뚱하다고 가난하고 빽 없다고 또는 성격이 안 좋다고 점수를 깎는 경우는 없다.
영화 ‘야수와 미녀’의 동건(류승범)은 너무 순진하고 세상을 모르는 것 같아 안타까울 정도다. 시각 장애인인 예쁜 여자친구가 안구 이식 수술로 눈을 뜨게 되자 자신의 못생긴 외모에 여자친구가 실망할 것을 걱정해 성형외과로 향한다. 여자친구에게는 자신이 장동건만큼 잘 생겼다고 거짓말을 해 놓았고, 자신의 못생긴 외모만 극복하면 여자 친구와의 사랑을 지킬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영화는 못 생긴 동건과 이 때 등장한 준수한 탁준하(김강우)의 사랑 대결로 보인다. 하지만 동건에게 더 어려운 상황은 자신이 케이블 방송국에서 일하는 평범한 성우인데 비해, 준하는 잘 나가는 검사라는 것이다.
사실 동건과 준하는 외모면에서는 큰 차이가 없어 보인다. 이상하게 눈썹을 밀고 얼굴에 상처 자국 몇 개 넣었다 해서 류승범이 갑자기 야수처럼 보이지도 않을 뿐더러, 김강우라는 배우가 소위 꽃미남으로 분류되는 배우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이들을 가르는 것은 차라리 동건의 헐렁한 티셔츠와 준하의 깔끔한 양복이다. 현실에서라면 성형외과가 아니라 차라리 로또를 사러 가는 게 더 나은 방법이었을 지 모른다.
초등학교 첫사랑을 만나서 실망하는 이유가 외모의 변화 때문만은 아니다. 그보다는 외적인 것에 더 실망하는 법이다. 어렸을 때는 다른 편견 없이 외모와 성격만으로 판단하니까 도리어 정직하다. 나이가 들면 사람을 판단하는 잣대가 더 복잡하고 다양해진다.
영화는 못생긴 외모를 극복하고 미녀를 얻는 한 남자의 이야기 같지만, 실제로 그가 극복해야 했던 건 외모의 차이보다는 오히려 사회적 지위의 차이다. 못생겨도 능력 있는 남자를 선호하는 게 요즘 여성들이다. 그런 명백한 사실을 모른 채, 순진하게도 과히 빠지지도 않는 자신의 외모 탓만 하는 동건이 내내 안쓰러워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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