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詩)로 말할 수 없는 것들, 그 형식으로 전하지 못한 것들을 이야기하고 싶었어요. 내가 가진 것들을 비우고 아이들이 지닌 것들을 옮기다 보니 동화가 되고 소설이 된 겁니다.”
이윤학 시인이 첫 장편동화 ‘별’(아이들판)을 냈다. 곧 첫 소설 ‘졸망제비꽃’(황금부엉이)도 출간된다.
‘별’은 10여년 전 경북 울진 죽변의 작은 마을에서 겪고 들은 일을 품어오다 쓴 것이라고 했다. 동화는 호기심 많은 장난꾸러기 두 아이가 펼치는 에피소드들을 코믹하게, 다단한 삶의 아픔을 내면화하며 커가는 과정을 뭉클하게 전한다. 이들의 일상을 지켜보며 다독이고 타이르고 품어안는 성호의 아버지 ‘필수 아저씨’도 등장한다.
가난한 목수인 그는 나무의 결이 왜 있냐는 물음에 “그건 나무의 숨소리”라고 대답한다. 할머니의 숨소리는 주름이고 아기의 숨소리는 울음이고, 성호와 ‘나’의 숨소리는 웃음이라고. “잘 봐라. 수평으로 보면 나이테가 되고, 수직으로 보면 무늬가 되지. 수평과 수직이 잘 어울려야, 좋은 나뭇결이 되는 거란다.”
필수아저씨는 어느 날 교통사고로 숨을 거두고 아이들은 그 아픔을 오롯이 감당한다. “아빠가 그러는데 아이들은 한 번씩 아플 때마다 크는 거래.” “아저씨, 성호도 어른이 되느라 아픈 건가요? 이 아픔이 끝나면 우리는 어른이 되는 건가요?”
성장소설처럼 읽히는 ‘졸망제비꽃’은 서울서 전학 온 초등학생 여자아이와 미친 여자 ‘똥산씨’의 슬프고 아름다운 교감의 이야기다. 소설에서 ‘똥산씨’는 방석 포대기를 복대처럼 두르고 늘 마을을 쏘다니는, 그래서 아이들의 놀림감인 여자로 등장한다. 가끔 제 정신이 돌아오면 한 없이 침울해지지만 평소에는 항상 웃고 다니는 여자.
사업에 실패한 아버지와 새어머니와 함께 사는 유란이는 가끔 똥산씨의 손을 씻겨주고 함께 놀며 표정과 몸짓으로 마음을 나눈다. “행복한 순간을 잊지 않고 살면 늘 웃을 수 있어요.”
이 작품 역시 시인의 어릴 적 경험과 기억에서 길어올린 이야기가 토대가 됐다고 한다. “마을에 그런 여자가 있었어요. 세월이 흐르면서 그의 몸에서 나던 냄새며 얼굴을 사라졌지만 그 천진난만한 웃음은 뚜렷이 남더군요. 그 웃음에 빚진 게 참 많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는, 시는 쓰는 게 아니라 옮기는 것이고,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오감(五感)을 통해 전하는 것이라 여기는 시인이다. 말에 눌(訥)한 그는, 시에서 말을 많이 하는 것은 오히려 시적 대상의 느낌을 훼손한다고 믿는 시인이다. 그에게 동화와 소설은 어쩌면 그렇게 아껴둔 심중의 말들을, 시를 다치지 않게 지키면서, 온전히 전하기 위한 방편인지 모른다.
“소설은 이제 그만이지만 동화는 좀 더 쓸 거예요. 관념이 고정되기 전 아이들의 어휘는 엄청난 상상력의 산물인 것 같아요. 그 꿈과 상상 공상의 세계에 매료됐거든요.”
그는 ‘별’ 끄트머리의 ‘지은이의 말’에 “콘크리트보다 더 딱딱해진 어른들의 가슴에 잃어버린 추억을 되돌려주고 싶었다”고, “ 아이들의 가슴이 어른들처럼 딱딱해지기 전에, 제 나이에 맞는 생각과 꿈과 추억을 만들 수 있도록 시간을 내어주고 공간을 마련해”주고 싶었다고 적었다.
최윤필기자 walde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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