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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환 박사의 뉴스 속의 과학] 구분과 통합, 거꾸로 가는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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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환 박사의 뉴스 속의 과학] 구분과 통합, 거꾸로 가는 사회

입력
2005.10.2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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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머니에 하얀 공, 빨간 공, 그리고 검은 공을 넣은 뒤 빨간 공을 뽑을 확률은 대략 33%다. 하지만 색을 구분하지 못하는 사람에게 뽑으라고 한다면 빨간 공을 뽑을 확률은 100%가 된다.

빨간 공이나 하얀 공이나 검은 공이나 어차피 모두 같은 색으로 보이니 어떤 공을 뽑든지 빨간 공이나 마찬가지라는 이야기다.

통계적 역학이라는 물리학 분야에서는 이 같은 개념을 사용한다. “자연계의 현상이 변하지 않는데 보기에 따라 결론이 바뀐다는게 무슨 이야기냐”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대량의 입자를 다루는 거시 물리학에서는 확률이라는 편리한 기법을 사용하므로 실제 보기에 따라 현상이 바뀔 수도 있다.

조사하는 대상의 입자들이 관찰자에 의해 구분될 수 없다면 그 대상은 보스-아인슈타인의 통계를 따른다. 바꿔 말하면, 입자 몇 개의 자리를 바꿔치기 한다고 해서 물질의 성질은 변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반대로 입자들을 하나하나 구분하여 명찰을 달아줄 수 있다면 그 물질은 맥스웰-볼츠만의 통계를 따른다.

우주의 모든 입자는 고유한 개체인데 관찰자가 구분할 수 없다 하여 모든 입자를 똑같이 취급한다면 말이 되느냐라고 반문할 수도 있다.

하지만 거시적으로 보면 분명히 실험의 결과와 보스-아인슈타인의 통계가 맞아 떨어지는 경우가 있다. 빛을 구성하는 입자인 광자의 성질이 이 보스-아인슈타인의 통계를 따른다. 우리가 태양으로부터 받는 빛의 스펙트럼도 알고보면 이 보스-아인슈타인의 통계와 맞아 떨어진다.

반대로 가스의 성질, 플라즈마 내부 입자의 속도 분포 등은 맥스웰-볼츠만의 통계를 따른다. 어떤 물질계의 거시적 현상을 규명하기 위해서는 우선 이 물질 내부의 입자들에게 표를 달아줄 수 있을지 없을지 잘 생각해야 한다는 이야기다.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맞는 답을 낼 수도 있고, 완전히 틀린 답을 낼 수도 있기 때문이다.

과학을 벗어난 세상에서도 이런 구분은 필요한 것 같다. 대한민국 내에서 사람을 골라낸다면 너도 나도 모두 대한민국 국민이므로 보스-아인슈타인의 통계를 따라 구분하지 않아야 할 것이다.

그런데 요즈음 사회 지도층, 특히 정치권에서 벌어지는 현상을 보면 국익을 위해 내편 네편 가르지 말아야 할 부분에서 오히려 서로 이름표를 붙여 구분하려 한다.

보수, 진보를 나누고, 가르쳐야 할 자, 가르침을 받아야 할 자를 나눈다. 대한민국 국민 모두에게 고유의 번호가 매겨져 있어 그 번호에 따라 등급별 국민으로 나뉘는 기분이다.

우리가 대표로 선출해놓은 국회의원들은 국민을 대신해 이 분류 작업을 선도한다. 오히려 사안을 섬세하게 분류해 대응 방식을 정해야 할 외교에서는 모두 한꺼번에 몰아 적국으로 통일해 취급하는 것 같다. 외교는 맥스웰-볼츠만의 통계를 적용한다는 말이다.

물론 보기에 따라 다른 것이니 어떻게 보느냐는 개인 취향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실험결과와 맞추어 보면 어느쪽으로 보는 것이 조금 더 타당한지 알 수 있다.

그래서 묻고싶다, 대한민국이 운영한 실험결과는 어떻게 돼가고 있는 것인지. 일반 시민이 살아가는 대한민국 사회가 즐거워서 춤이라도 추고싶을 정도로 희망적이 됐는지 말이다.

김주환·연세대 토목공학과 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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