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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굴뚝산업 역군들 '독종정신' 아직 건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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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굴뚝산업 역군들 '독종정신' 아직 건재합니다"

입력
2005.10.2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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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대국의 자존심을 확인한 쾌거지요. 돼지머리를 올리고 안전기원제를 지내면서 이 부품을 장착한 선박이 안전 운항하기를 빌었습니다.”

경남 창원시 두산중공업 크랭크샤프트 공장의 이종판(51) 공장장은 아직도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했다. 지난 21일 세계 최대 크기의 크랭크샤프트(피스톤의 직선 왕복운동을 회전운동으로 바꿔주는 선박 엔진 핵심부품) 마지막 공정을 마치고 합격 판정을 받은 기쁨이 나흘이 지났어도 여전했다.

이번에 만든 크랭크샤프트는 길이 27m, 무게 414톤에 달하는 세계 최대 규모로 14개 실린더를 가진 11만 마력의 컨테이너 선박 엔진에 장착된다. 말 11만 마리가 끄는 힘의 원천인 셈이다.

“독일 슐쳐사의 설계도면을 받아 6월 중순부터 4개월간 매달렸습니다. 제강, 단조, 가공, 조립까지 규모가 엄청나게 크면서도 고난도의 세밀함을 요구하는 작업이라 정말 뿌듯합니다. 이 정도의 설비와 기술을 보유한 회사는 세계적으로 우리와 현대중공업, 일본 고베제강 밖에 없습니다.”

특히 어려웠던 과정은 베어링을 샌드페이퍼(모래가 붙어있는 헝겊)로 문지르는 수작업. 거친 표면을 매끄럽게 하는 작업에 10명씩 3개조가 투입돼 1주일이 걸렸다.

“이만한 크기의 크랭크샤프트 제작은 침착하고 정성스러운 한국인의 세밀한 손끝에서나 가능한 고난도 작업입니다.”

경남 밀양 출신인 이 공장장은 성균관대 기계공학과를 졸업하고 1981년 한국중공업(현 두산중공업)에 입사했다. 이후 기계가공 분야에서만 한 우물을 판 그는 97년부터 크랭크 공장과 워크롤(원하는 두께로 철판을 압연하는 설비) 공장에서 공장장으로 일해왔다.

그가 가장 자랑스러워 하는 것은 두산중공업의 크랭크샤프트와 냉간압연용 워크롤이 각각 2003년과 2004년 정부로부터 세계 일류상품으로 선정된 것.

“두산중공업이 세계 일류상품을 5개 보유하고 있는데 그 중 2개의 생산 현장을 지휘하니 이보다 큰 영광이 있겠습니까.”

그의 별명은 ‘독종’이다. 과장시절 발전설비용 로타(가스터빈으로 전기를 만드는 대형 회전체) 제조 작업 때 1주일간 퇴근도 안 하고 공장에서 밤을 지새우면서 붙었다. 일이 끝난 뒤 그는 쓰러졌고 구급차에 실려 응급실로 후송됐다.

“기절하는 장면은 기억이 안 나는 데 눈 떠보니 병원이더라구요. 굴뚝산업은 열심히 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그는 일을 시작하면 반드시 끝장을 보고야 마는 성격이다. 또 물고 늘어지는 끈기가 특기라고도 했다. 가장 좋아하는 사람이 ‘포철 신화’의 주인공 박태준 포스코 명예회장인 것을 보면 그의 가치관을 알 수 있다.

“요즘 젊은이들은 제조업 하면 등을 돌립니다. 공장과 지방이 떠오르니 편한 것을 찾는 요즘 세태에 꺼리는 것은 당연하겠지요. 하지만 공장은 개발시대 대한민국을 일으킨 효자 중의 효자입니다. 추격자가 엄두도 못 내는 압도적 우위의 크랭크샤프트를 만드는 데 앞만 보고 달릴 작정입니다.”

박석원 기자 spar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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