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8대 2. 꼭 다수결이 ‘정의’는 아니지만, 이 정도면 더이상 할말이 없다. 20일 유네스코 총회에서 실시된 ‘문화 콘텐츠와 예술적 표현의 다양성보호 협약(문화다양성협약)’ 투표 결과다.
극단적으로 단순화하면 문화란 영화이고, 다양성보호란 할리우드 영화로부터 자국영화 지키기이다. 반대 2(미국, 이스라엘)도 따지고 보면 하나에 불과하다. 할리우드 영화산업을 이끌어가고 있는 세력이 유대인들이니까.
전세계가 이렇게 이 협약에 찬성표를 던진 이유는 자명하다. 강자의 논리, 경제적 논리로 문화에까지 패권주의를 휘두르는 미국에 대한 비판이다. 경제를 담보로 한 그들의 문화침략은 1년에 100여 편을 만들던 멕시코의 영화산업을 초토화했고, 뉴질랜드의 주요 방송사를 손에 넣었다.
미국의 문화산업은 이미 2002년 기준으로 순이익 600조원을 돌파했고, 그 중 절반이 해외에서 벌어들인 것이다. 우주항공산업이나 자동차산업을 능가하는 수익이며, 여기에 영화가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함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유네스코 총회 전, 콘돌리자 라이스 미 국무장관이 각국 대표들에게 서한을 보내 “세계무역기구(WTO)의 무역자유화에 지장을 초래하고, 사상과 이미지의 자유로운 표현이나 전달을 방해할 가능성이 있다”며 협약채택을 늦출 것을 촉구한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러나 미국의 이런 논리는 미국의 문화침탈에 대한 세계 각국의 위기감 앞에서 여지없이 무너졌다. 적어도 문화만은 ‘표현이 위협받거나 취약한 상황에 있을 경우 자국 내에서 문화 다양성 증진을 위한 규제 조치를 취하거나 재정지원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의 스크린쿼터(한국영화 의무상영일수)도 이제 국제법적으로 근거를 확보한 셈이다.
협약은 한걸음 나아가 혹시 있을지 모를 미국의 변칙수법에도 일침을 놓았다. ‘당사국은 이미 가입한 기타 협약을 해석하고 적용할 때, 혹은 기타 국제협정에 가입할 때, 본 협약의 관련조항을 고려한다(제20조)’고 명시했다. WTO나 자유무역협정(FTA) 협상에서 미국의 횡포를 막자는 것이다. 협약 채택 직후 미국이 가장 강하게 반발한 것도 바로 이 조항이었다.
미국의 생각은 뻔하다. 아무리 국제협약이 있더라도 당사국들과 개별 통상협상을 통해 울타리를 넘자는 것이다. 여기엔 스크린쿼터를 완고히 지키고 있는 한국도 물론 포함된다. 한국은 지금 경제에 올인하는 분위기이니 자동차 반도체 관세 등을 들고 나오면 꼼짝못할 것이고, ‘수출 없이 경제 없다’는 주장도 설득력을 가질 것이다. 또 북핵 문제도 있고, 더구나 한국영화 시장점유율도 40%를 넘었으니.
이런 우려가 있기 때문일까. 용기 있게 협약에 찬성표를 던져놓고 돌아서자마자 슬금슬금 미국의 눈치를 보는 듯한 우리 정부의 태도에 29개 문화단체가 모인 ‘세계문화기구를 위한 연대회의’가 비판을 하고 나섰다. 내부적으로는 논란과 문제가 없지는 않지만 스크린쿼터는 우리 문화와 정신을 지키는 일이다.
만약 돈을 위해 그 정신의 울타리를 걷어치운다면, 일제 식민지배가 오히려 우리의 경제발전을 가져와 좋았다는 논리와 뭐가 다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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