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중충한 회색 콘크리트 벽이 어린이들의 힘으로 화사한 파스텔톤의 벽화로 탈바꿈했다.
서울 관악구 봉천1동 동명지역아동복지센터 외벽. 불과 폭 3㎙ 남짓한 골목길을 따라 늘어선 길이 60㎙ 가량의 이 벽은 불과 2달 전만 해도 주민들이 몰래버린 쓰레기가 가득했고, ‘주차금지’ 문구가 무색하게 들어찬 불법주차 차량이 뿜어낸 매연으로 그을음이 가득했다.
동네의 ‘사각지대’와도 같았던 이곳을 변화시킨 이들은 사회복지시설인 동명지역아동복지센터의 원생들. 유치원~초등학교 5학년 어린이들로, 서울문화재단의 ‘예술사랑 문화나눔’ 프로젝트 1기생으로 선발된 원생 60명은 지난달 30일부터 벽화작업을 시작, 26일 오후 벽화 제막식을 가진다. 제막식은 참가자들에 대한 수료증 수여식, 마임, 트럼펫 공연 등 한바탕 마을잔치가 될 전망이다.
생선 한 마리를 두고 다투는 흰 고양이와 초콜릿 빛깔 강아지, 낮은 건물과 좁은 골목 사이를 힘겹게 빠져나가는 코끼리, 고양이와 강아지 사이로 날아다니는 분홍빛 하트 등 벽화의 그림들은 이들의 천진한 상상력을 한껏 드러낸다.
문화적으로 소외된 청소년들에게 창작의 기회를 주면서 생활 속의 도시미화를 이끌어내겠다는 취지로 시작된 서울복지재단의 ‘예술사랑 문화나눔’ 프로젝트의 교육을 맡은 기관은 민중화가로 유명했던 임옥상씨의 미술연구소.
임씨의 연구소는 2003년부터 전국 10여 곳의 학교의 놀이터나 운동장의 벽화를 그려주는 프로젝트를 진행하기도 했다. 임씨 등 디자인, 회화, 조각 등을 전공한 7명의 미술전문가들은 이곳에서 아이들의 미술적 상상력을 자극하는 방식으로 수업을 진행했다.
교사들은 “고양이와 강아지가 싸울 때는 어떻게 화해시켜야 할까?” “코끼리가 골목에서 옴싹달싹 못하면 어떻게 빼낼 수 있을까?” 라는 등의 질문을 던졌고 아이들이 스케치에 그려온 해답으로 벽화의 기본 아이디어를 완성했다. 1주일에 2시간씩 함께 벽에 색을 칠하고, 벽에 부착할 도자오브제를 만들면서 작품을 완성했다.
동명아동복지센터 박진선(29) 사회복지사는 “원생들의 상당수가 한부모 자녀이거나 조부모 슬하에서 자라 자존감이 낮았다”며 “그림을 통해 스스로 도시미화에 참여함으로써 아이들이 ‘나도 무언가를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게 된 것이 가장 큰 소득”이라고 말했다.
한편 서울문화재단은 올해 안으로 4편의 ‘예술사랑 문화나눔 ’프로젝트를 새로 추진할 예정이다. 소년소녀가장, 장애우, 탈북청소년 등 문화혜택을 충분히 누리지 못하는 이들이 대상이다.
28일부터 서울가톨릭복지회가 운영하는 서초구 방배동의 중증장애인보호시설 ‘사랑손 공동체’ 원생들과 보호시설 벽화작업을, 다음달 중순에는 도봉구 창동의 장애아전담 보호시설인 ‘해바라기 어린이집’의 어린이들과 어린이놀이터 벽화 작업을 진행하게 된다.
서울문화재단 문화사업부 김영호 차장은 “예술활동에 소외된 청소년들을 위주로 프로젝트를 진행할 예정”이라며 “내년에도 12개의 프로젝트를 새로 진행할 예정인만큼 관심있는 이들의 참여를 기다린다”고 말했다.
문의(02)3789-2147∼
이왕구기자 fab4@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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