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릇이 다르면 담는 물건도 달라야 한다. ‘손안의 TV’ ‘테이크 아웃 TV’로 불리며 다섯 달 전 출범한 위성DMB(Digital Multimedia Broadcasting). 아직은 이용자가 23만여명에 불과하지만 희망을 갖고 이 새로운 그릇에 담을 ‘작은 콘텐트’를 만드는 사람들이 있다.
▲ 비디오
퇴근길 지하철. 30대 초반의 한 회사원이 자신의 휴대폰 화면을 보고 낄낄거린다. 위성 DMB의 유일한 자체 비디오채널인 채널블루(채널7번)가 매주 수요일(오후 8시 20분) 방영하는 코미디프로 ‘코미디 카운트다운’. 물론 위성DMB에서만 방영한다. ‘웃찾사’ 개그맨들이 나와 30분 동안 다양한 주제와 형식으로 코너를 이끌어간다.
여기까지는 기존 TV의 코미디프로와 다를 게 없다. 그러나 한 코너의 길이가 2분 이내로 아주 짧다. 촌철살인, 강한 반전이 무기다. 프로그램 전체를 다 볼 필요도 없다. 한 정거장 가는 시간이면 한 코너를 즐길 수 있다.
정지모(35) PD. 독립제작사인 미디어파크에서 일한다. 10년 경력으로 ‘아주 특별한 아침’ ‘발견채널 유레카’ ‘게임정보특급’ 등 지상파 TV 프로그램을 연출했다.
그런 그가 위성DMB 프로그램에 매달리고 있다. ‘10대, 무서운 아이들’에 이어 ‘여섯시&채널블루’(월~금, 오후 6~8시) 금요일 방송분 연출을 맡았다. 10분짜리 ‘10대…’는 그야말로 10대들만의 이야기였다. 그들의 성, 10대 폭주족 등. 아예 그들 보고 직접 만들라고 ‘10대 PD특공대’까지 모집했고, 그들은 친구들의 이야기를 숨김없이 담아왔다. 그가 생각하는 위성DMB 프로그램은 ‘굵고 짧게’. 서론은 필요 없다.
본론만. “지극히 개인적 매체입니다. 따라서 사회적 의미보다 개인적으로 필요하고 의미 있어야 봅니다. 나한테만 얘기하는 느낌이 들어야 합니다.”
생방송 문화정보 프로 ‘여섯시&채널블루’ 역시 이 원칙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주고 받는 문화쇼’로 운영한다. 대표적인 것이 쿠폰타임. 공연을 소개하면서 티켓을 나누어준다.
‘티켓이 필요한 사람은 보라’는 것이다. 인터랙티브의 장점을 살려 시청자를 끌어들이는 전략이다. 그는 여전히 고민 중이다. 이게 과연 위성 DMB에 맞는 형태인가.
또 제작사에게 위성 DMB는 아직 서브 개념이다. 그래도 이 일을 고집하는 이유는 ‘이게 방송이야’ 라고 생각하는 것까지 시도해 볼 수 있다는 점. “한마디로 인디 정신이 살아있는 채널이지요.”
비디오채널은 11개. 뉴스 스포츠 드라마 게임 영화채널 등은 기존 방송의 것을 내보낸다. 물론 그대로는 아니다. 뉴스는 15분 단위로 별도 편집한다. 채널 블루의 자체 제작은 전체 40%(15개 프로)정도이다. 시행착오도 많았다. 5~10분짜리가 어울릴 것이란 생각부터 틀렸다. 너무 짧아 만날 시간이 부족했다.
30분짜리로 방향을 틀었다. 대신 짧게 끊어가는 아이템 퍼레이드식 구성을 택했다. 세트도 멋있게 꾸미니까 오히려 작은 화면에서 조잡해 보여 단순화했다.
오히려 제작비가 당초 예상(지상파의 70%)보다 내려갔다. 제작사도 기존 프로덕션에 갇히지 않고 애니메이션, 벤처광고, 인터넷 업체로 확대한 결과 무빙카툰 ‘순정만화’ 같은 것이 나왔다.
이시혁 TU미디어 컨텐트사업본부장은 “지금 수익성이 적다고 특성 없고 질 나쁜 콘텐트를 만들 수는 없다. 언젠가는 이 모바일 콘텐트가 아시아 시장으로까지 나아갈 것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24일부터 11월 4일까지 실시하는 ‘DMB콘텐츠 발굴 및 육성을 위한 공모전’ 역시 그 노력의 하나일 것이다.
▲ 오디오
가수 이은미. 10월 4일 처음 라디오 DJ가 됐다. 뮤직시티미디어가 운영하는 위성DMB의 오디오채널 클럽3040.뮤즈(채널34번)에서 매일 오후8부터 2시간 동안 30, 40대를 대상으로 ‘이은미의 Some’을 진행하고 있다. “편안하게 음악에 집중하고, 내가 아는 음악정보를 이야기하는 것이 좋다”고 했다.
히트곡에 대해 ‘나는 별로’ 라고 스스럼없이 말한다. ‘은미의 선택’에서는 직접 선곡까지 해 ‘이 부분을 집중해서 들어보라’고 권한다. 그는 위성DMB의 매력을 ‘이은미가 자기 식으로 설명을 달아주니까 좋다’는 자유와 개인성이라고 했다. 정작 주어야 할 음악과 정보는 팽개치고 무더기 진행자의 잡담과 가십으로 채워지는 기존 지상파 라디오가 싫다고 했다.
뮤즈에는 이은미처럼 그 ‘자유’가 좋아 DJ를 맡은 스타가 여럿 있다. 유희열 노영심 김진표 배칠수 윤상. 특히 윤상은 미국 보스톤에 머물고 있으면서 그곳에서 직접 프로그램을 제작해 인터넷으로 송출한다.
낮 12부터 2시간 동안 ‘트랄라 투데이’를 진행하고 있는 윤명훈(33)씨는 어쩌면 위성DMB 라디오의 방향을 제시하고 있는지 모른다. 지상파 라디오 진행과 방송작가 생활을 거친 그녀는 호기심과 도전으로 위성DMB에 뛰어들었다. 그녀가 선택한 것은 원맨 제작.
작가 선곡자 진행자(DJ)에 오퍼레이터까지 1인 4역을 자청했다. 직장인을 대상으로 하는 프로인 만큼 음악은 10년 전 것이나 요즘 노래 중 30대 감성에 맞는 것을 고르고, 정보 역시 그들의 관심사에 집중한다.
즐거운 직장생활을 위해 유머 코치도 하고, 각종 통계도 소개한다. ‘지루하지 않게, 즐겁게 유익하게’가 그의 모토. 이를 위해 새벽부터 자료 모으고 정리하고, 음악을 고르는 그녀가 꼽는 위성 DMB의 최고 매력 역시 선곡과 멘트에서의 ‘자유’이다.
오디오 채널 26개 중 16개는 24시간 논스톱으로 음악만 내보낸다. 뮤즈처럼 DJ가 생방송으로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채널은 5개. 나머지는 코미디 외국어교육 등이다.
옥성삼 뮤직시티미디어 방송본부장은 위성 DMB가 “음악 듣는 패턴을 바꾸었다”고 한다. 음악의 다양성과 파괴력, 일부지만 방송 중인 음악을 바로 휴대폰으로 다운받아 다시 들을 수 있는 편리함, FM라디오보다 두 배나 좋은 음질. 게다가 방송 듣다 바로 메시지를 보내 음악신청도 할 수 있다.
앞으로는 가사 지원에 스틸이미지 동영상까지 가능해진다. 문제는 청취자가 적다는 것. 여기에 12월이면 지상파 DMB까지 13개 채널로 라디오 방송을 시작한다. 콘텐트와 운영의 차별화 전략이 더욱 절실해졌다.
이대현 대기자 leedh@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