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는 좋아지는데, 국민은 가난해진다.’
한국은행이 25일 발표한 ‘3ㆍ4분기 실질 국내총생산(GDP) 속보’에 따르면 경기는 완연한 봄이다. 3분기에 4.4% 성장을 이룬데다 앞으로의 전망도 밝다. 특히 자동차 가전제품 등 내구재 구입의 급증은 지속적인 경기회복의 원동력이 될 것으로 분석된다. 내구재를 새 것으로 교체하는 것은 일회성 소비가 늘어나는 것보다 경제 파급력이 크기 때문이다.
문제는 경기 회복세가 완연한데도 불구하고 국민들의 소득은 거의 늘지 않았다는데 있다. 실질 국내총소득(GDI) 증가율은 3분기 0.2%에 그쳤다. 5년여 만에 가장 낮은 것이다. GDI는 GDP에다 수출입가격(교역조건) 변화에 따른 무역손익을 포함한 개념이다. 수출가격은 떨어지고 수입가격은 올라가 교역조건이 악화하면, 국민들이 소비하거나 투자할 수 있는 재원이 그만큼 줄어 국민소득이 감소하는 이치이다.
예컨대 옛날에는 자동차 100대를 수출해 기계 1대를 수입해오다, 지금은 200대를 팔아야 기계 1대를 들여올 수 있다면 국민들의 실질구매력(소득)은 그만큼 줄어든 것이다.
실제 3분기 무역손실은 12조6,000억원으로 분기 기준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1~9월 합계는 33조원에 달한다. 주력 수출품인 정보기술(IT) 제품의 국제 가격이 크게 떨어지고 있는 가운데 고유가로 수입액은 크게 늘었기 때문이다.
경제성장률은 실질 GDP의 전년 동기대비 증가율이다. 때문에 국민들의 생산활동 총량(GDP)은 크게 늘었지만, 이를 통해 벌어들인 소득의 상당부분이 해외로 빠져나가면서 국민들의 체감경기는 별로 나아진 게 없는 셈이다.
이런 현상은 올들어 가속화하고 있다. 지난해 경제성장률이 4.6%일 때 국민소득은 3.7% 늘었지만, 올해는 1~3분기 성장률이 3.5%인데 소득 증가율은 0.3%에 그치고 있다.
또 수출의 성장 기여율은 3분기 52.1%에서 66.7%로 높아진 반면, 내수의 성장 기여율은 47.9%에서 33.3%로 떨어졌다. 수출이 늘어도 투자로 이어지지 않고 부품 수입이 급증하는 점을 고려하면, 이 또한 경제성장률 증가가 소득 및 체감경기 개선으로 이어지지 못하는 이유 중의 하나이다.
여기에다 소비 회복이 본격화한다고 하지만 대형TV 판매 등 고소득층의 소비만 증가세를 보이고 있을 뿐, 저소득층의 소비지출 회복은 여전히 뚜렷하지 않다.
결국 경제성장률과 국민소득증가율의 양극화, 수출대기업과 가계의 양극화, 고소득층과 저소득층의 양극화로 국민들이 경기회복을 피부로 느끼려면 한참 시간이 걸릴 것 같다. 박 승 한국은행 총재가 최근 국정감사에서 “하반기 잠재성장률 수준의 회복이 기대된다”면서도 “소득증가율이 낮아 체감경기 회복은 이에 못 미칠 것”이라고 우려한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
유병률기자 bryu@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